[정윤경 기자 jungiza@sisajournal.com]
'절윤 거부'하며 '사전투표 폐지' 주장…尹의 계엄 주장 이유와 결 같아
'부정선거론', 윤 어게인의 핵심 논리…"보수, 음모론으로 죽어가고 있어"
"정작 지금 국민의힘이 놓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역할입니다. 헌법 질서 파괴와 법치 파괴를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국민의 소중한 한 표 한 표를 지키기 위해 선거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2월20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기자간담회 발언 중)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 1심 선고 다음 날, 장동혁 대표가 기자간담회에서 꺼낸 이 한 문장은 당 안팎에 강한 파장을 남겼다. 12·3 비상계엄 사태의 핵심 명분이었던 부정선거론과 결을 같이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확산하면서다. 특히 당내에서 '부정선거 세력과의 절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는 와중에 현행 선거 제도 개편을 거론한 대목은 의도와 무관하게 논란의 불씨를 되살렸다는 지적도 낳고 있다. 원론적 문제 제기인지, 이른바 '윤 어게인' 세력을 의식한 정치적 메시지인지를 둘러싼 공방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2월20일 장 대표의 기자간담회 최종안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도부의 사전 검토를 거쳐 확정됐다. 이 과정에서 일부 문구는 수정됐다. 초안에는 윤 전 대통령에게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한 지귀연 재판부의 판결을 비판하는 문구가 포함됐으나 정점식 정책위의장이 '판결을 정면 비판하는 내용은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반대하면서 삭제된 것이 대표적이다. 사법부 판단을 둘러싼 직접적 공세는 내부 조율 과정에서 걸러낸 셈이다.
ⓒChatGPT 생성이미지
張 "사전투표, 부정선거 의혹 끊임없이 제기"
그럼에도 수정 과정에서 끝내 남은 문장이 있었다. 바로 '선거 시스템 개편' 대목이다. 지도부의 사전 검토를 거치고도 해당 표현이 그대로 남았다는 점에서 이것이 단순한 즉흥적 발언이 아니라 숙고 끝에 선택된 메시지가 아니냐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당시 안을 검토한 한 지도부 관계자는 시사저널에 "사전투표 제도를 없애고 본투표만 진행해야 한다는 취지였다"면서 "선거의 공정성과 신뢰를 높이자는 문제 제기였다"고 설명했다.
보수 원로인 조갑제 '조갑제TV' 대표는 2월23일 페이스북에 "장동혁 대표가 며칠 전 법원의 1심 판결을 비판하면서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거부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는데 부정선거 음모론을 감싸는 내용이 있다"며 "(선거 시스템 개편 발언은) 투·개표 과정에 부정이 있어 표 도둑이 일어나고 있다는 전제에서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2024년 4월5일 부산 강서구 명지1동 사전투표소에서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연합뉴스
장동혁, '사전투표 폐지' 개정안 발의도
장 대표는 과거부터 부정선거론의 핵심 근거로 꼽혀온 '사전투표제 폐지'를 공개적으로 주장해 왔다. 그는 지난해 3월 사전투표 폐지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은 사전투표제를 없애는 대신 현행 하루인 선거일(본투표)을 3일(금~일요일)로 연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장 대표는 당시 제안 이유에 대해 "사전투표 제도는 2014년 도입 이후 실효성 논란과 부정선거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며 "도입 10년이 지났지만 투표율 상승을 견인했는지도 불확실하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선거 시스템 개편'이라는 화두가 12·3 비상계엄 사태를 촉발한 핵심 논리와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의 배경으로 '부정선거 의혹 규명'을 전면에 내세웠고, 그 연장선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군을 투입했다. 지난해 2월18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9차 변론기일에도 윤 전 대통령 측은 약 2시간의 변론 중 절반가량을 부정선거 주장에 할애했다. 2월25일 최후진술에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관위 전산 시스템 보안 문제와 '가짜 투표용지'를 재차 언급했다. 부정선거론을 끝까지 거두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장 대표가 부정선거론에 대해 명확히 선을 긋지 못하는 배경에는 정치적 딜레마가 자리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부정선거 담론을 부정하는 순간 자신의 권력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당권을 쥐는 과정에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결별하고 강성 지지층과의 연대를 택했다. 고성국씨와 전한길씨 등 이른바 '윤 어게인' 진영의 지지, 그리고 이들이 구축한 온라인 조직력은 현 지도부 체제를 떠받치는 핵심 자산으로 꼽힌다. 부정선거론은 이들을 결집시키는 접착제이자 정치적 동력으로 기능해 왔다.
이에 대해 이성권 국민의힘 의원은 장 대표의 간담회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에 대한 단절 요구를 현 선거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받아치는 모습은 스스로를 '부정선거론자'이자 '윤 어게인'이라 천명한 것"이라고 직격했다.
이 때문에 부정선거 담론은 장 대표에게 더 이상 선택 가능한 카드가 아니라 쉽게 떼어낼 수 없는 족쇄가 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실제 전씨는 2월9일 유튜브를 통해 "(나는) 윤 어게인, 윤 배신자 축출, 부정선거 척결, 이것 때문에 김문수(전 장관) 버리고 장동혁(대표) 지지했다"며 공개적으로 압박에 나섰다. 이어 "만약 내 요구에 침묵하면 장 대표는 당원과 윤 전 대통령을 동시에 배신한 것이므로 이후에 일어날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은 장 대표에게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해 조갑제 대표는 "장동혁(대표)은 '선거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말을 끼워넣어 자신을 지지하는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에게 아부하고 있는 것"이라며 "윤석열(전 대통령)은 자신이 확산시킨 부정선거 음모론에 대해 취소한 적이 없고, 장동혁은 거짓인 줄 알면서도 음모론자의 편을 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수층과 국민의힘 당원들 가운데 음모론자들이 많고 이들이 맹목적으로 장동혁을 지지한다"며 "보수는 음모론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책임자들을 응징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 대표의 인사(人事)에서도 부정선거 담론과의 결별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당 윤리위원장에 윤민우 가천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를 임명한 점이다. 윤 위원장은 2023년 11월 언론 기고에서 "내년 한국 총선에 중국이 개입할 동기와 역량은 충분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총선에 대한 외국 개입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것으로 부정선거론과 맞닿아 있다는 해석을 낳았다. 그는 또 국민의힘이 주최한 '온라인 접속국가 표시제' 도입 토론회에서 중국·러시아 정보기관이 가짜 계정을 활용해 SNS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제를 하기도 했다. 인사는 곧 메시지라는 점에서 그 함의는 가볍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