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락인 탐사저널 사건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20대 여성' 가면 쓴 김소영, 경계 허물고 접근…그루밍으로 살인 설계
스마트폰·AI로 치사량 계산…조용하지만 더 치명적인 신종 범죄 등장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한 낡은 모텔방, 빛바랜 벽지와 찌든 담배 냄새가 진동하는 그곳에서 대한민국 과학수사의 자부심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골목마다 촘촘히 박힌 폐쇄회로(CC)TV와 실시간으로 추적되는 디지털 발자국은 그동안 물리적 폭력을 제어하는 강력한 억제기였다. 그러나 이번 연쇄살인의 피의자 김소영(20)은 그 감시망의 빈틈을 정교하게 파고들었다.
그는 흉기를 휘두르지 않았고, 피해자와 몸싸움도 벌이지 않았다. 대신 스마트폰 화면 너머로 사냥감을 물색하고, 인공지능(AI)과 대화하며 '살인의 치사량'을 계산했다. 기존 수사 매뉴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변칙적인 새로운 괴물이 출현한 것이다.
김소영은 칼이나 둔기 대신 호감 어린 외모와 다정한 미소를 내세웠다. 피해자들은 의심 없이 그가 건넨 음료를 마셨고, 그것은 그대로 독배가 됐다. 촘촘한 감시망을 비웃듯, 김씨는 디지털 기기 뒤에 숨어 수사기관의 판단력을 마비시켰다. 이번 사건은 한국 범죄사에서 큰 전환점이 되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디지털 신세대 연쇄살인'의 등장을 알리고 있다.
김소영은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경로를 밟으면서도, 그 수법은 지극히 현대적이다. 경찰의 사이코패스 진단 평가(PCL-R) 결과, 그는 40점 만점에 25점을 기록했다. 한국에서 25점은 사회적 격리가 필요한 '고위험군'을 가르는 임계점이다. 과거 유영철(38점)이나 강호순(27점)의 수치보다 낮다고 해서 안심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그가 보여준 범행 방식은 이전 세대의 괴물들과 궤를 달리한다.
ⓒChatGPT 생성이미지
유영철의 '망치'보다 무서운 김소영의 '미소'
유영철이 스스로 만든 둔기로 선혈이 낭자한 현장을 만들고, 강호순이 스타킹으로 직접 숨통을 조이는 '육체적 파괴'에 집중했다면, 김소영은 '살인의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범행 현장은 기이할 정도로 정적이다. 그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환자 행세를 하며 병원을 돌며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을 합법적으로 처방받았다. 그리고 이를 숙취해소제에 섞어 건넸다. 피해자들은 고통스러운 비명 대신 깊은 잠에 빠져들며 생의 불꽃이 꺼져갔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생성형 AI인 '챗GPT'의 활용이다. 정남규가 살인을 위해 체력을 단련하고 수사 기법을 독학했다면, 김소영은 방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범죄를 학습했다. AI에게 특정 약물을 술과 함께 복용했을 때의 치명적 효과, 사망 가능성, 부검에서 검출되지 않는 법을 구체적으로 질문했다. "수면제와 술을 같이 먹으면 죽을 수도 있나"라는 질문에 AI가 사망 위험을 경고하자, 그는 이를 금지령이 아닌 '살인 매뉴얼'로 받아들였다. 김소영은 생성형 AI를 일종의 공범으로 이용한 셈이다.
첫 번째 범행에서 피해자가 의식을 잃는 데서 그치자, 그는 AI의 답변을 바탕으로 다음 범행에서 약물 투여량을 두 배 이상 늘렸다. 흉기를 갈던 과거의 살기가 디지털 데이터 분석으로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이코패스는 우리 곁에서 '정상성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정두영이 성실한 사업가로, 강호순이 다정한 가장의 모습으로 위장했다면, 김소영은 '무해한 20대 여성'이라는 사회적 정체성을 방패로 삼았다. 건장한 남성들은 자신보다 작고 어린 여성이 자신을 해칠 것이라는 공포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김소영은 이 심리적 안도감을 역이용해 그루밍을 시도했다. SNS에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이미지를 올리고 가짜 가정사를 털어놓으며 동정심을 유발했다. 피해자들에게 건넨 숙취해소제는 배려로 둔갑한 치명적인 미끼였다.
이들의 뇌는 일반인과 '하드웨어' 자체가 다르다. 사이코패스의 뇌를 MRI로 촬영하면 감정과 공감을 관장하는 편도체 크기가 일반인보다 약 18% 작고 활성도가 현저히 낮다. 또한 충동을 억제하는 안와전두피질의 회백질이 적다. 머리로는 "살인은 나쁜 것"이라고 알지만(이성), 그것이 가슴(감정)으로 전달되지 않는 상태다. 이러한 뇌 구조적 결함은 후천적 환경과 결합해 '디지털 소시오패스'를 완성한다. 스마트폰 화면 너머의 인간관계에 익숙한 세대에게 타인의 고통은 클릭 한 번으로 차단할 수 있는 팝업 광고와 다를 바 없다.
과거 연쇄살인범들이 범행 후 극심한 흥분이나 반사회적 분노를 표출했다면, 김소영이 보여준 냉담성은 가히 압권이다. 피해자가 숨진 직후, 그는 피해자의 카드로 13만원어치의 치킨을 주문했다. 소스만 20여 가지를 세밀하게 추가했다. 시신이 놓인 방에서 태연히 닭다리를 뜯으며 SNS에 셀카를 올리고, 지인에게 "항정살이 먹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에게 살인은 감정적 격변이 아니라, 자신의 식욕이나 물욕을 채우기 위한 '로그인 과정' 정도의 무게였다.
기존의 연쇄살인범들이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나 물리적 폭력에 노출되며 괴물이 되었다면, 신세대 사이코패스들은 정서적 고립과 디지털 익명성이라는 배양액 속에서 진화한다. 타인과의 정서적 교감이 거세된 자리에 물질만능주의와 전능감이 들어찬다.
이들은 자신이 시스템보다 우월하다는 지적 유희를 즐기며, 수사기관의 알고리즘을 역이용한다. 살인을 저지른 후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잠들어서 먼저 갈게"라는 알리바이 메시지를 보내는 행위는 수사관들이 흔히 확인하는 타임라인을 교란하려는 치밀한 계산의 결과였다.
이는 우리 옆집에 숨어 지내는 잠재적 사이코패스들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진화된 형태의 위장술이다. 20대 여성이라는 사회적 약자의 신분, 앳된 외모, 다정한 말투는 남성들의 경계심을 완전히 해제시키는 '생물학적 독배'가 됐다.
범죄 잔혹성보다 가해자 외모에 더 관심 기울이는 어긋난 대중심리
괴물은 진공 상태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김소영 사건은 개인의 악마성을 넘어 우리 사회 시스템의 부재가 빚어낸 합작품이다. 우리 사회의 안전망은 그를 조기에 식별하지 못했다. 학교와 지역사회의 관리 체계는 작동하지 않았고, 그는 온라인 공간으로 숨어들어 자신의 뒤틀린 욕망을 키웠다.
이번 사건이 연쇄살인으로 번진 데는 사법·의료 시스템의 부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소영은 여러 병원을 돌며 약물을 수집하는 '약물 쇼핑'을 자행했지만, 의료계의 통합 관리 시스템은 이를 걸러내지 못했다. CCTV는 범인의 도주 경로는 포착할 수 있어도, 컵 속에 담긴 무색무취 약물과 피의자의 머릿속에서 진행되는 범죄 모의까지는 감시하지 못한다. 수사 당국이 여전히 '칼부림'이나 '시신 유기' 같은 전통적인 폭력 수법에만 안테나를 세우고 있을 때, 범죄는 '합법적 약물'과 '심리적 지배'라는 소프트웨어적 수법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우리는 이제 단순히 CCTV를 늘리는 하드웨어적 접근을 넘어서야 한다. 고위험 약물의 처방 패턴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AI 기반 조기 경보 시스템, 그리고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지배(그루밍)를 범죄로 규정하는 법적 근거가 절실하다.
김소영은 단기간에 수십 명의 남성과 접촉하며 그들의 결핍을 파고들었다. 만약 데이트 앱이나 채팅 플랫폼에 범죄 이력을 연동한 신뢰 인증제가 의무화돼 있었다면, 포식자의 사냥터는 이토록 넓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 속 '가면'에 대한 맹신도 되돌아봐야 한다. 피해 남성들이 김소영에게 쉽게 넘어간 배경에는 "어린 여성은 위험하지 않다"는 성별 선입견과 "호의는 선의다"라는 무방비한 믿음이 있었다. 숙취해소제라는 배려의 상징이 살인 도구로 변질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그들은 포식자가 설계한 정서적 그루밍의 덫에 발을 들였다. 가장 우려스러운 지점은 범죄의 잔혹성보다 가해자의 외모에 더 관심을 두는 팬덤화된 범죄 숭배 현상이다. 김소영의 신상이 공개되기 전, 그의 SNS 사진을 본 일부 대중은 "저렇게 예쁜 여자가 그럴 리 없다"거나 "무죄 판결을 해야 한다"며 가해자를 미화했다. 이는 생명의 무게보다 이미지를 우선시하는 우리 사회의 도덕적 파산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팬덤 현상은 사이코패스에게 강력한 지지 기반을 제공한다. 김소영은 체포되기 30분 전까지도 셀카 사진을 올리며 소통에 집착했다. 그에게 대중의 관심은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하거나 전능감을 충족시키는 도구였다. 범죄자를 '셀럽'으로 격상시키는 알고리즘과 이를 소비하는 관음증적 태도가 제2의 김소영을 꿈꾸는 잠재적 포식자들에게 "걸리지만 않으면, 혹은 걸려도 유명해지면 그만"이라는 뒤틀린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앞으론 '연쇄살인'의 개념 완전히 업데이트해야
이번 사건에서 경찰의 대응은 뼈아픈 실책으로 남았다. 경찰은 첫 번째 사망 사건 발생 후 김소영의 신원을 특정했음에도, "증거 확보가 더 필요하다"며 소환 날짜를 스스로 늦췄다. 그 사흘 사이 두 번째 살인 피해자가 발생했다. 경찰은 '20대 여성이 건장한 남성을 연쇄 살해했을 리 없다'는 성별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살인의 고의성을 간과했다. 범행 수단의 잔혹성이 요건에 미달한다며 신상 공개를 거부한 초기 판단은 연쇄살인의 개념 업데이트에 실패했음을 자인한 꼴이다. 약물을 이용한 '조용한 살인'은 칼로 찌르는 물리적 폭력보다 더 비열하고 치명적이다. 수사기관이 범죄자의 가면을 벗기는 데 주저하는 사이, 피해자들의 안전권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제 대한민국 수사기관과 사회 시스템은 '연쇄살인'의 개념을 완전히 업데이트해야 한다. 김소영 사건은 우연히 발생한 돌연변이가 아니라, 디지털 기술과 인간의 소외가 결합해 빚어낸 필연적인 진화의 결과물이다. 경찰의 무사안일한 초기 대응과 판단력 부재는 이미 진화한 괴물을 낡은 그물로 잡으려다 발생한 참사다. 김소영 사건은 시작에 불과하다. 기술의 발전은 범죄를 지능화하고, 인간 소외는 사이코패스들의 활동 무대를 온라인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제는 물리적 감옥보다 더 촘촘한 '디지털 감시망'과 '윤리적 방어선'이 절실하다. 수사기관은 과거의 전형적인 범죄자상에서 벗어나, 데이터 뒤에 숨은 '조용한 괴물'들을 식별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적 수사 체계를 갖춰야 한다.
괴물은 더 이상 어두운 골목에서 흉기를 갈지 않는다. 그는 밝은 조명 아래서 우리와 함께 밥을 먹고, SNS에 '좋아요'를 누르며, 다정한 미소로 독배를 건넨다. 기술은 진보했으나 인간의 악의는 그 기술의 날개를 달고 더 은밀하고 치명적으로 변모했다. 우리가 이 '차가운 악'의 정체를 직시하지 않는다면, 다음 사냥감은 바로 당신의 옆자리에서 스마트폰을 쥔 평범한 모습으로 존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