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수 세대정치연구소 대표 sisa@sisajournal.com]
주머니 얇아진 청년들, 가성비 소비로 눈 돌려
가처분소득 줄어든 2030 세대, '소비 주역' 자리도 흔들
요즘 2030 세대의 소비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있다면 단연 '올다무'다. 올리브영·다이소·무신사를 의미하는 올다무는 이제 2030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브랜드가 되었다. 아마 청년층에서 이 브랜드 중 한 곳도 이용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온라인 쇼핑이 대세라지만 이들 매장은 늘 소비자들로 북적인다. 모객 효과가 뛰어나 일반 쇼핑몰뿐 아니라 백화점·프리미엄 아웃렛 등에서도 이들을 유치하려 애쓴다.
요즘 올다무의 위상은 매출에서도 드러난다. 2020년 각각 1조9000억원, 2조4000억원이었던 올리브영과 다이소의 매출은 지난해 5조원과 4조원을 넘겼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5년 새 두 배 남짓 성장한 것이다. 무신사의 성장 속도는 더 빠르다. 이 회사 매출은 2020년까지만 해도 3300억원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1조5000억원 정도의 매출을 기록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주목할 건 이 회사들이 근 2~3년 사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민간 소비가 위축된 시기였음에도 세 회사는 폭풍 성장을 거듭했다. 이는 이들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양질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면서 가성비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3월18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 위치한 올리브영 매장 앞으로 청년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욜로족' 시대 가고 '요노족' 시대 도래
불과 몇 년 전, 청년층에서 과시적 소비가 유행한 적이 있다. 골프가 붐을 이뤘고 명품은 매장마다 오픈런이 끊이지 않았다. 물론 오마카세 유행은 미디어에 의해 다소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부와 귀중품을 과시한다'는 의미의 '플렉스(flex)'나 '젊은데 돈도 많은 사람'을 칭송하는 '영앤리치(young and rich)' 같은 단어가 유행했던 건 사실이다.
과시적 소비가 기승을 부린 4~5년 전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였다. 당시 각국 정부는 전염병 대응을 위해 재정 지출을 큰 폭으로 늘렸다.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확대되면서 부동산·주식·가상화폐 등 자산 가치가 폭등했다. 청년들은 이른 나이에 큰돈을 벌어 조기 은퇴하는 파이어족을 꿈꾸며 투자에 매진했다. 꽤 많은 이가 재미를 봤다. 하지만 옥외 활동이 제한된 까닭에 돈을 벌어도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억눌린 욕구는 소비로 분출됐다. 이 '보복 소비' 심리는 위스키·수입차 등 이전까지 사치품이라고 생각되던 재화들의 수요도 끌어올렸다.
유행은 당대 소비자들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수년 전에 값비싼 재화들이 품귀 현상을 빚은 건 다수의 시장 참여자가 그것을 갖길 원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오픈런도 잘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몇천원짜리 '두쫀쿠'나 사는 정도다. '나를 위한 작은 사치'라며 합리화했던 충동구매는 사라지고 대신 '요노(YONO)'가 등장했다. You Only Need One, 즉 하나면 충분하다는 뜻이다.
'인생은 한 번뿐'이라며 펑펑 쓰던 '욜로(YOLO)족' 시대가 가고 '요노족' 시대가 도래한 이유는 간단하다. 생활이 빠듯해졌기 때문이다. 팬데믹 당시 살포된 천문학적인 지원금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물가 인상을 자극했다. 이에 세계 각국은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인상률은 누그러졌지만 그렇다고 가격이 내려간 건 아니다.
그 여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4분기 및 연간(지출)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의하면 2025년 우리나라 가계의 실질 소비는 전년 대비 0.4% 감소했다. 실질 소비가 감소한 건 2020년 이후 5년 만이다. 구체적으로는 주거·수도·광열, 정보통신, 음식·숙박, 기타 상품·서비스를 제외한 나머지 품목에서 실질 소비가 줄어들었다. 오락문화 -2.5%, 의류 -2.1% 등인데, 요약하면 주거비와 생활비 등이 오르면서 소비 여력이 줄어든 거라고 할 수 있다.
소비의 위축은 모든 연령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2030 세대의 경우 과거보다 가처분소득 자체가 줄었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6월 발간한 '세대별 소비성향 변화와 시사점'에 따르면, 이들의 가처분소득은 2014년 월 348만원에서 2024년 346만원으로 감소했다. 덩달아 소비액도 2014년 257만원에서 2024년 248만원으로 줄었다. 소득이 늘었는데 소비는 줄어든 다른 세대와 대조된다.
취업은 안 되는데 주거비·생활비 계속 올라
가성비 소비는 저성장에 드리운 그림자다. 우리보다 앞서 그 길을 걸은 나라가 일본이다. 1990년까지 5% 이상의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일본 경제는 1990년을 기점으로 침체에 빠져들었다. 장기 불황으로 일본 소비자의 구매력은 점차 떨어졌다. 기업들은 품질은 유지하면서도 비용을 낮추는 식으로 대응했다. 무인양품이나 유니클로가 이때 성장했다. 이들뿐 아니라 일본의 많은 기업이 '코스파(コスパ·cost performance)', 우리말로 가성비가 좋은 걸로 정평 나 있다. 장기 저성장 시대를 살아온 산증인들이기에 그렇다.
사실 소비자가 주머니가 얇아졌다고 무작정 싼 걸 찾는 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올다무가 아니라 알리·테무 같은 중국산 플랫폼이 큰 인기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등장 초기의 우려와 달리 우리나라 유통 업계에 큰 영향을 끼치진 못하고 있다. 선진국 소비자의 눈높이를 충족시키엔 부족함이 많기 때문이다. 가성비 소비란 선진국과 저성장의 교집합에서 발생하는 소비 형태인 셈이다.
한때 청소년 사이에서 패딩점퍼 브랜드별로 계급을 나눈, 이른바 '패딩 계급도'가 유행하던 시기가 있었다. 패딩뿐 아니라 시계·지갑 등 온갖 상품마다 계급도가 만들어졌다. 사치와 과시도 경제가 성장하던 시절의 낭만인 걸까. 요즘 청년들은 브랜드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500원에서 5000원 사이 가격대의 다이소 화장품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게 그 증거다. 다이소 화장품은 ODM(제조자 개발·생산)으로 만들어진다. 생산자가 여타 화장품 브랜드와 다르지 않다. 어차피 같은 데서 만드는데 굳이 브랜드값을 얹어 비싸게 살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올다무를 필두로 한 한국의 기업들은 양질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내놓으며 젊은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2030 소비자가 사치 부리지 않고 실용성을 중시하는 건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한 번쯤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청년들이 가성비 소비를 추구하게 된 건 지갑이 얇아져서고, 지갑이 얇아진 건 결국 취업은 안 되는데 주거비·생활비만 계속 올라서다. 보통의 경우 2030 세대는 소비의 주역으로 꼽힌다. 우리나라 청년층은 그 타이틀마저 기성세대에게 이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동수 세대정치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