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수 시사저널e 기자 holywater@sisajournal-e.com]
제조업 벗어나 소프트웨어 플랫폼 기업 꿈꾸는 글로벌 완성차 업계
현대차, 테슬라 출신 사장 전진 배치…빅테크 협력 늘리며 판 키워
전기차 시장이 쑥쑥 크면서 자동차 회사들의 경쟁 방식도 확 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한 번 충전해 얼마나 멀리 가느냐'(주행거리)가 가장 중요한 성적표였지만, 이제는 이 기술이 어느 정도 평준화됐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새로운 무기인 '자율주행 기술'을 앞세우며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기차의 배터리나 하드웨어 성능 경쟁이 사실상 '물리적 한계'에 도달했다고 본다. 배터리 효율이 좋아지고 곳곳에 충전소가 늘어나면서 소비자가 느끼는 성능 차이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전기차를 탈 때 짧은 주행거리 때문에 불안해하는 운전자가 많았다. 하지만 테슬라를 필두로 많은 자동차 회사가 배터리 성능을 높이면서, 이제는 한 번 충전에 400km를 훌쩍 넘게 달릴 수 있어 불편함이 크게 해소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의 시선은 차량의 단순한 '주행 능력'에서 스스로 운전하는 '주행 방식'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 중심에 서있는 핵심 기술이 바로 자율주행이다. 자율주행은 단순히 운전을 편하게 해주는 기능을 넘어, 차 안에서의 시간을 완전히 바꿔놓고 자동차 회사의 돈 버는 방식까지 새로 짜는 마법 같은 기술로 평가받는다. 요즘은 자율주행 기능이 얼마나 똑똑한지를 보고 차를 고르는 소비자가 훌쩍 늘었다. 차를 산 뒤에도 스마트폰처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새로운 기능을 계속 추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 넷플릭스나 멜론처럼 다달이 돈을 내는 '구독형 서비스'를 도입해 자동차 회사가 차를 팔고 난 뒤에도 돈을 계속 벌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이러한 흐름은 자동차 산업의 뼈대를 흔들고 있다. 단순히 쇠를 깎아 차를 만드는 '제조업'에서 벗어나, 굴러가는 거대한 컴퓨터를 다루는 '소프트웨어 플랫폼 기업'으로 변신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Gemini 생성 이미지
테슬라의 쏠쏠한 구독 마법
테슬라는 자율주행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창출 공식을 만들어낸 대표적인 사례다. 테슬라는 완전자율주행(FSD) 시스템을 중심으로 차의 기능을 끊임없이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소프트웨어를 팔아 돈을 버는 모델을 확대하고 있다.
테슬라에 따르면 이 FSD 기능을 돈 내고 쓰는 이용자는 2021년 약 40만 명에서 지난해 말 기준 약 110만 명으로 껑충 뛰었다. 테슬라가 지금까지 전 세계에 판 차가 약 900만 대라는 점을 생각하면, 전체 고객의 12%가량이 FSD를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구형 모델 등 FSD 기능이 아예 없는 차량을 빼고 계산하면 실제 이용 비율은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올해 국내에 FSD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후, 운전자가 운전대를 거의 잡지 않아도 차가 알아서 목적지까지 매끄럽게 달리는 영상들이 퍼지면서 테슬라 브랜드에 대한 사람들의 호감도도 크게 올라갔다. 현재 한국에서 팔리는 테슬라 차량 중에는 당장 FSD가 켜지지 않는 차도 많지만, 언젠가 업데이트될 것이라는 기술력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판매량을 끌어올리는 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
자율주행 기술은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데도 큰 몫을 한다. 최첨단 정보기술(IT)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지면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이것이 결국 더 많은 차를 파는 결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다. 자율주행 시장이 앞으로 얼마나 커질지에 대한 기대감도 엄청나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는 전 세계 자율주행차 시장 규모가 2025년 31억 달러에서 2026년 45억 달러로 커지고, 2034년에는 무려 798억 달러 규모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매년 40% 이상의 무서운 속도로 성장한다는 뜻이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추격도 매섭다. 어마어마한 주행 데이터를 긁어모아 인공지능을 똑똑하게 만들고,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복잡한 도심에서 테스트를 늘려가며 당장에라도 상용화할 기세다.
결국 자율주행을 둘러싼 싸움은 이제 자동차 회사들끼리의 경쟁을 넘어섰다. 인공지능, 똑똑한 반도체, 방대한 데이터 처리 기술이 핵심 무기가 되면서 자동차와 IT 기업 간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지는 모습이다.
현대차의 변신…제조업에서 기술 기업으로
현대차그룹도 이런 거대한 변화의 파도에 올라타기 위해 자율주행을 중심으로 회사의 체질을 확 바꾸고 있다. 자율주행 사업부를 중심으로 조직을 다시 정비하고, 글로벌 빅테크 기업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인재들을 최전선에 내세워 미래 전략을 짜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행보는 올해 테슬라와 엔비디아의 핵심 인재였던 박민우 사장을 첨단차플랫폼(AVP) 본부장 겸 포티투닷 대표로 파격 발탁한 것이다. 박 사장은 테슬라에서 일할 당시 지금의 자율주행 시스템인 오토파일럿을 만드는 데 깊이 참여했고, 카메라로 주변을 인식하는 구조를 짜는 등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인물이다.
현대차는 세계적인 기술 기업들과 손잡는 데도 적극적이다. 자율주행의 두뇌 역할을 하는 인공지능 연산과 데이터 처리 능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반도체 최강자들과의 협력을 끈끈하게 다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대차그룹은 인공지능 반도체 대장주인 엔비디아와 손잡고 '드라이브 하이페리온'이라는 뼈대(아키텍처)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 플랫폼은 각종 컴퓨터 칩(CPU, GPU)과 주변을 보는 센서, 카메라를 하나로 묶은 똑똑한 두뇌와 같다. 운전자가 살짝만 개입하는 레벨2부터 차가 알아서 주행하는 레벨4 자율주행까지 두루 쓸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현대차는 차가 돌아다니며 데이터를 모으고, 이 데이터를 인공지능이 공부하게 한 뒤 다시 차에 적용하는 촘촘한 시스템을 만들 계획이다. 경험이 쌓일수록 운전 실력이 늘어나는 사람처럼, 끊임없는 데이터 축적과 학습을 통해 기술을 완벽하게 다듬겠다는 전략이다. 멀리 내다보면, 운전자가 아예 필요 없는 레벨4 자율주행을 일상에서 흔하게 쓰는 것이 목표다. 특히 스스로 돌아다니는 무인 로보택시 같은 새로운 서비스 시장에 뛰어들어 쏠쏠한 을 내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이미 성과도 나오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세운 자율주행 합작회사 모셔널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현지 차량 호출 회사와 손잡고 로보택시를 시험운행하고 있다. 복잡한 진짜 도심에서 기술이 잘 통하는지를 시험해 보고 노하우를 쌓는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남의 기술을 빌려 쓰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적인 기술을 가지기 위한 노력도 함께 하고 있다. 다른 회사 플랫폼에 휘둘리지 않도록 스스로 소프트웨어를 짜고 반도체 생태계를 만드는 방안도 깊게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단기적으로는 외부 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기술 개발 속도를 높이는 한편, 장기적으로 자체 자율주행 기술인 '아트리아 AI'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면서 자율주행 내재화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