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기자 jun@sisajournal.com]
5060 남성에 집중된 비극 '고독사'…경제력 상실이 삶의 연결고리를 끊는다
붕괴된 사회적 기반·자존심의 장벽…고립된 삶이 부른 마지막 선택
한때 김정수씨(가명·56)를 수식하던 화려한 이력은, 서울 관악구 대학동 고시촌의 1.5평 방 안에 갇히면서 무용지물이 됐다. 사업 실패 뒤 재기를 선언하며 가족을 뒤로하고 고시 서점가로 숨어든 그의 마지막 희망은 '자격증 시험 합격'을 통한 부활이었으나, 현실은 냉혹했다. 수중에 돈이 떨어지면서 조급해진 김씨는 2년 전 홈쇼핑 물류창고 관리직으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하던 중 과로로 쓰러지게 됐고, 김씨에게 남은 것은 중증 간경화뿐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내려앉은 뒤에도 그는 '사장님' 시절의 자존심을 꺾지 않았다. 유명 브랜드 의류를 고집하고 식사 예법을 따지던 김씨. 집주인이 그의 면모를 두고 "철저히 자기 관리를 하던 분"으로 기억할 정도였다. 그러나 재기의 희망이 보이지 않자 그는 술과 담배로 하루를 채우기 시작했다. 간경화 악화에도 멈추지 않던 술잔은 결국 파국을 불렀다. 집주인이 여행을 다녀온 사이, 김씨는 반지하 방에서 홀로 숨을 거뒀고, 시신은 11일 만에 발견됐다. 복잡한 행정 절차에 가로막혀 가족에게 온전히 인계되지 못한 그는 '무연고 사망자'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떠났다. 공영 장례 현장에 뒤늦게 찾아온 동생들의 오열만이 그가 혼자가 아니었음을 뒤늦게 증명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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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남성의 심리적·사회적 기제 얽혀 있어
이 같은 '자존심의 감옥'은 고독사한 중장년 남성들의 삶을 관통하는 비극의 서사다. 과거의 영광이 클수록 현실의 초라함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탓이다. 부산에서 인테리어 사업으로 승승장구하던 박경호씨(가명·61)도 예외는 아니었다. "성공하겠다"며 큰 꿈을 품고 수도권으로 온 박씨는 코로나19라는 암초를 만났다. 파산과 이혼, 가족과의 단절을 겪으며 그가 붙든 마지막 직업은 대리운전이었다. '사장님'이라 불리던 시절의 당당함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얼굴빛이 검게 변하더니 발길이 끊겼다." 건물 관리인의 증언처럼 박씨의 고립은 서서히 진행됐다. 월세 체납 끝에 발견된 그의 시신은 이미 부패가 상당히 진행돼 고독사의 참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성공을 향한 집념으로 버텼던 그의 삶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외로운 순간에 멈춰섰다.
고립의 발단은 제각각이었으나 끝은 매한가지였다. 임석종씨(가명·63)의 사례는 급격한 신체적 붕괴가 고립을 가속화한 경우다. 동대문에서 평생 수제화를 만들며 현장 노무직을 전전하던 그의 일상은 작업 중 입은 부상을 기점으로 무너졌다. 가장 먼저 균열이 생긴 것은 식생활이었다. 홀로 지낸 세월은 길었으나 제때 끼니를 챙기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영양 불균형은 면역력 저하로 이어졌고, 방치된 상처는 염증을 거쳐 전신 부종으로 번졌다. 스스로를 돌볼 여력을 상실한 임씨는 정부 지원을 위한 사회복지사 실사 방문을 기다리던 중, 쓰레기가 방치된 방 안에서 홀로 생을 마감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았던 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골방으로 숨어들어 홀로 죽음을 맞이한 배경에는 중장년 남성 특유의 심리적·사회적 기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고독사 현장을 추적하며 이들의 생전 궤적을 분석해온 송인주 스스로랩 대표는 그 원인을 '남성성'이라는 틀을 통해 진단했다. 송 대표는 "평생 부양의 주체로 살아온 이들에게 누군가의 돌봄을 받는 처지는 자신의 정체성이 무너지는 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젠더적 구조가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게 만드는 '자존심의 벽'을 세우고, 고독사라는 극단적인 결과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 견고한 자존심의 벽 너머에는 역설적으로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는 지독한 갈증도 숨어있다. 이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건 '사장님'이라는 과거의 허울 대신,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따뜻한 환대와 말 한마디였다. 시사저널은 서울 양천구의 한 복지관에서 그 작은 관심이 견고했던 고립의 벽에 어떤 온기를 채워넣는지 지켜봤다.
3월16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정종합사회복지관의 한 연습실. 쑥스러운 듯 기타 피크를 만지며 입을 뗀 유동근씨(63)의 목소리에는 옅은 떨림이 묻어났다. 21년 전 아내와 사별하고 두 딸마저 시집보낸 뒤, 그에게 남은 것은 지독한 적막뿐이었다. "혼자 있으니 집 밖으로 나갈 일이 없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전단지를 보고 전화를 걸었죠. '나 같은 사람도 가도 되느냐'고."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된 망인의 고독사 현장 모습 ⓒ시사저널 DB
"아버님 말고, '선생님'이라 불러주세요"
유씨가 조용필의 《미지의 세계》 악보를 넘기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두 딸이 독립한 후 시작된 고립 생활은 3년이나 이어졌다. 가스비와 보일러비가 연체될 정도로 형편이 기울었고, 끼니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고향의 노모가 보내주는 반찬으로 겨우 허기를 면하며 그가 의지한 것은 오직 술과 담배였다. 하루 두 병씩 비워내는 소주만이 유일한 말동무였다.
몸보다 더 무섭게 무너진 것은 마음이었다. 고립이 깊어질수록 어두운 생각들이 그를 옭아맸다. 과거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이들에 대한 원망과 악감정이 독버섯처럼 솟아올랐다. 유씨는 "몸이 황폐해지는 것도 고통스러웠지만, 마음이 밑바닥까지 황폐해지는 것이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딸들을 위해 밥을 차려주며 느꼈던 '가장으로서의 존재감'이 사라진 자리에는 고독만이 공기처럼 감돌았다.
그런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음악'과 '사람'이었다. 복지관의 5060 남성 밴드 '레인보우'에 합류해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고 한다. "남자들은 자존심 때문에 속내를 잘 안 꺼내요. 집에만 있으면 벽하고만 대화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이러다 죽겠다' 싶은 생각이 절로 들죠."
연습실을 방문했을 때 복지관 관계자는 기자에게 "호칭을 아버님 말고 선생님으로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곳 연습실에 모인 레인보우 멤버들은 서로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쓴다. 사회복지사들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사회의 한 구성원이자 인격체로 존중받고 싶다는 뜻이다.
수업 전부터 열기는 뜨거웠다. 체크셔츠 차림의 손종호씨(50)는 휴대폰으로 색소폰 악보를 검색하고 강사의 설명을 꼼꼼히 메모했다. 베이스를 맡은 이진희씨(58)가 음 잡기에 애를 먹자, 보컬 김흥수씨(67)는 "단전호흡이라도 해야겠다"며 농담을 던졌다. 연습이 이어지자 처음엔 말이 없던 이들 사이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기타 줄을 퉁기던 손형래씨(69)는 옆자리 동료에게 리듬을 차근차근 설명하며 합을 맞췄다. '레인보우 밴드' 멤버 중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그였지만, 활기찬 모습 이면에는 굴곡진 삶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었다.
손씨는 한때 번듯한 사업체를 운영하던 '사장님'이었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는 그의 삶을 뒤흔들었다. 사업 실패와 함께 찾아온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은 그를 절벽으로 내몰았다. 그는 "빚더미에 앉은 뒤 20년 가까운 세월을 신용불량자로 살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불가능해진 그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안정적인 직장 대신 일용직 노동 현장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손씨는 자신의 사례가 고립된 중장년 남성들의 보편적인 비극과 맞닿아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력이 곧 자신의 존재 가치였던 전통적 남성상에 익숙한 세대일수록, 사회적 지위를 잃었을 때 느끼는 무력감이 더 크다는 의미다.
"직장 안에서는 나름의 존중을 받으며 살지만, 아무 대책 없이 사회로 내던져지면 그런 대우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그 상실감과 자격지심이 집 안으로, 고립의 문 뒤로 숨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3월17일 서울 양천구 신정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여성 자원봉사자와 지역 장년 남성이 고립 위험이 높은 중장년 1인 가구 남성을 위해 ‘공유 냉장고’에 비치할 밑반찬을 조리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50대 남성 고독사, 여성보다 3.4배 많아
실제 5060 남성들이 처한 고립의 깊이는 지표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4 고독사 발생 실태조사'는 현재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가장 최신의 공식 통계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전체 고독사 가운데 2명 중 1명은 50·60대 남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50대 남성 고독사(1004명)는 같은 나이대 여성보다 3.4배나 많다. 2025년이 포함된 통계는 올해 말 발표될 예정이지만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전망이다.
이러한 남성 편중 현상은 시신 인수마저 거부되는 '무연고 사망' 통계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3년 무연고 사망자 현황'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25년 상반기까지 무연고 사망자는 총 1만5345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남성 사망자는 1만1468명으로 전체의 74.7%를 차지했다. 연도별 남성 비중 역시 2023년부터 2025년 상반기까지 매년 75%대 안팎을 유지하며 고착화하는 양상이다. 직장이라는 '명함'을 잃는 순간, 인간관계라는 사회적 자본까지 파산해 버리는 구조적 비극이 통계로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통계가 가리키는 '파산한 관계망'을 복원하려는 시도는 현장에서 소리 없이 이어지고 있다. 고립의 고리를 끊고 자생력을 키우는 이들을 만나기 위해 기자는 이튿날 신정복지관 조리실을 다시 찾았다. 이날 만들 메뉴는 배추김치와 메추리알 장조림. 한쪽에선 배추를 다듬고, 다른 쪽에선 완성된 음식을 용기에 담느라 분주했다. 처음엔 쭈뼛거리던 이들도 이제는 누구보다 열심이다. "함께 땀 흘리다 보면, 도움받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임을 금세 깨닫게 되시더라고요." 베테랑 자원봉사자 권분교씨(여·51)의 말이다.
하지만 가느다란 연결의 끈은 무심한 시선 하나에 쉽게 상처를 받고 끊기기도 한다. 다른 복지관을 찾았다가 발걸음을 되돌린 관악구 장민철씨(가명·52)의 사례는 고립된 이들의 '골방' 문턱이 왜 그토록 높은지를 보여준다. "큰 용기를 내서 찾아간 곳에서 제가 마치 귀찮은 불청객처럼 취급받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날 이후론 다시는 어디에도 도움을 청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사소한 불친절이 고립된 이들에게는 세상의 거부라는 확신으로 굳어지는 비극이 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5060 남성의 고독사를 개인의 불운이 아닌, '기계적 삶'을 살아온 중장년층의 구조적 준비 부족으로 진단한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많은 중장년 남성이 인생의 본질을 고민하지 못한 채 앞만 보고 달려왔다"며 "직장이 영원할 것이라 믿고 은퇴 이후를 대비하지 못한 결과가 고립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퇴직 후 '내보일 명함'이 사라지는 순간, 자신의 존재 의미마저 상실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웃 안부 살피는 공동체적 관심 병행돼야"
구조적 해법으로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득 중심의 선별 방식에서 벗어나 고립도와 같은 '실질적 욕구'를 기준으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며 "이웃이 안부를 살피는 공동체적 관심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허창덕 교수 역시 "중장년 남성들이 인생의 지향점을 재설정할 수 있도록 '마인드셋' 교육을 운영해야 한다"며 "남은 생애를 스스로 설계할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본질적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사별이나 이혼, 혹은 결혼 경험이 없는 중장년 남성 1인 가구는 사회적 관계망에서 가장 먼저 배제되고 고립되는 '고위험군'이다. 한때 한국 사회의 성장을 묵묵히 지탱했던 숙련공과 사업가들이 '고독사'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반복되고 있다. 중장년 남성들이 스스로를 가둔 '자존심의 감옥'은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실패해도 낙인찍히지 않고, 명함이 없어도 존재 자체로 인정받는 '심리적 안전망'이 부재한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철옹성 같던 중장년 남성의 자존심을 열어젖힐 열쇠는 그리 거창한 곳에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장님'이라는 빛바랜 명함 대신 "오늘 식사는 하셨느냐"고 묻는 소박한 안부 인사 한마디, 그 한 뼘의 환대만 있었더라도 그들이 홀로 마주한 마지막 페이지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가족의 오열조차 뒤늦게 도착한 그 고독한 방 너머로, 이제는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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