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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보수의 심장에 '파란색의 파란' 일으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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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대구, 6·3 지선 '최대 격전지'로…누적된 경제난에 보수 텃밭 '균열'

金, 출마 선언 동시에 지지율 49.5%로 1위…국힘은 여전히 공천 내홍

붉은 깃발만이 나부끼던 '보수의 성지' 대구에 이례적인 전운이 감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대구시장 출사표를 던진 가운데 견고했던 보수의 심장부에서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그간 보수 정당에 맹목적·일방적 지지를 보내온 대구의 표심이 최근 빠르게 '왼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라 발표되면서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단 한 번도 찾아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3월30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6·3 지방선거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金, 왼손엔 '회초리' 오른손엔 '선물 보따리'

보수의 도시 대구는 왜 '김부겸'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정치권에선 대구의 변심을 '인물론'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핵심은 누적된 지역 경제난과 보수의 내홍 속에 대구 유권자들이 이번 선거의 심판 대상을 '민주당'이 아닌, 대구의 집권당 '국민의힘'으로 옮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 틈을 김 전 총리가 '내란 심판'이 아닌 '보수 심판'(회초리론)과 '경제 발전'(선물 보따리론) 구호로 공략하면서 지방선거 초반 레이스에서 우위를 점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에 대구는 여전한 사지(死地)이자 험지다. 6·3 지방선거까지 두 달여, 과연 대구에서 '파란색의 파란'은 가능할까.

"제 번호 적으이소. 010-3170-XXXX." 3월30일 대구 중구 동성로 2·28기념중앙공원,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뒤 "대구 시민들 이야기를 직접 듣겠다"며 자신의 연락처를 공개했다.

김 전 총리는 출마 선언 내내 "대구는 정치가 문제"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대구 시민은 믿음을 갖고 표를 몰아줬지만 그 당(국민의힘)은 표만 받아갔다"며 "돌려주는 게 없고, 일을 하지도 않는다. 공천을 주는 서울 중앙당만 쳐다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대구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대구 정치부터 바꿔야 한다"며 "권투를 하면서 한쪽 팔만 사용했고, 축구를 하면서 한 다리로 했다. 이제 양팔, 양다리 다 쓰자"고 촉구했다.

강한 어조의 출마 선언과 달리, 김 전 총리의 출마 결심은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는 대구가 김 전 총리에게 '희망과 절망'이라는 두 기억의 땅이기 때문이다. 김 전 총리는 2016년 총선에서 '대구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수성갑에서 62.3%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는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하지만 기쁨은 채 5년을 못 갔다. 문재인 정부의 행정안전부 장관이라는 '스펙'에도 2020년 총선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김 전 총리는 당시를 두고 "대구에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이후 잠행을 이어오던 김 전 총리를 다시 움직이게 한 결정적 계기는 대구의 오랜 경제위기였다. 대구는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 지자체 경제성장률, 재정 자립도에서 전국 최하위 수준이다. 최근 대구의 연간 GRDP 성장률이 3년 연속 전국 최하위 그룹에 머물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며 지역 민심이 동요치는 분위기다. 실제 대구 GRDP는 2023년 0.1%로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고, 2024년에는 -0.8%로 역성장에 진입했다. 지난해(-1.3%)에는 낙폭이 더욱 커졌다. 김 전 총리가 출마 선언에서 '대구의 경제 낙후'를 지적하며 "국민의힘에 회초리를 들어달라"고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보수를 때리며, 경제 복원을 외친 김 전 총리의 메시지는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는 모습이다. 최근 대구 민심의 동요가 심상치 않다. 김 전 총리가 대구시장 적합도 다자 대결에서 1위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3월31일 발표됐다. 가상대결이고, 적은 표본 수임을 감안하더라도 민주당 후보가 대구시장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TBC 의뢰로 3월28~29일 대구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4명을 대상으로 '대구시 발전을 위해 누가 당선되는 것이 가장 적합한지' 물은 결과 응답자의 49.5%가 김 전 총리를 지목한 것으로 나타났다. 2위인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15.9%)과의 격차는 33.6%포인트에 달했다. 이어 유영하 의원(5.8%), 윤재옥 의원(5.6%), 홍석준 전 의원(3.2%), 이재만 전 대구동구청장(3.2%), 최은석 의원(2.4%) 순으로 나타났다(조사는 무선전화 자동응답 방식,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 ±3.5%포인트, 응답률 6.7%. 중앙선거여론조사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주호영 국회부의장,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 ⓒ시사저널 박은숙

대구 민심, '정권 심판' 대신 '국힘 심판?'

반면 안방을 지켜야 할 국민의힘은 사분오열 자중지란에 빠져 있다.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공천 배제)된 주호영 의원이 공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한 데 이어,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도 공천에 반발하며 독자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공천 파동'이 좀처럼 수습되지 않는 모습이다.

여기에 한동훈 전 대표가 대구 행정통합 등 지역 현안을 챙기며 보궐선거 출마 가능성을 열어둔 점도 변수로 꼽힌다. 주호영 의원이 무소속 출마에 나설 경우, 한 전 대표의 재·보궐선거 등판 가능성과 맞물려 보수 표심 분산이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반대로 주 의원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이 인용될 경우 공천 구도 자체가 다시 짜일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당내 혼란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 큰 변수는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김 전 총리에 대한 공개 지지 의사를 밝혔다는 점이다. 전직 대구시장으로서 일정한 조직 기반을 갖고 있는 데다, 정계 은퇴를 선언했음에도 일각에서는 여전히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지역 정가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낳고 있다.

홍 전 시장은 4월2일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부산은 스윙보터 지역이어서 더불어민주당이 가덕신공항도 해주고 해양수산부 이전도 해주지만 대구는 막무가내식 투표를 하니까 민주당 정권이 도와주지도 않고 버린 자식 취급을 하는 것"이라며 "대구 국회의원들은 당 때문에 당선된 사람들이지, 자기 경쟁력으로 된 사람이 없다"고 직격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을 지지한 게 아니라 김부겸을 지지한 것으로 봐달라"고 밝혔다.

다만 최근 흐름을 곧바로 대구의 '민심 변화 신호탄'으로 단정하긴 이르다는 신중론도 적지 않다. 12·3 계엄 사태의 역풍과 지역 경제 위기가 변수로 작용하고 있지만, 대구 유권자들의 견고한 정당 일체감, 즉 보수 성향은 여전히 상수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탄핵 정국' 등 보수진영에 대형 악재가 발생했던 시기에도 대구는 한 차례도 민주당 계열 후보에게 시장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2월27일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동층 변수 "라이온즈 팬이 타 팀 응원할까"

앞선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도 '지지 후보 없음'과 '잘 모름'을 합한 부동층이 20.3%로 나타나, 상당수 유권자가 여전히 선택을 유보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이들을 두고 당에 대한 실망은 있지만 민주당으로 이동하지는 않는 '샤이 보수'로 해석한다. "(프로야구팀) 삼성 라이온즈가 잘못해서 삼성 라이온즈를 욕할 수는 있지만, 다른 팀을 응원하지는 않을 것"(주호영 의원)이라는 기대 섞인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부겸 전 총리와 민주당 내부에서도 '섣부른 샴페인'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많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의 한 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던 대한민국인데 민주당 출신 대구시장은 배출된 적이 없지 않았나"라고 반문한 뒤 "선거 당일까지 대구 시민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당의 총력을 기울여야 '기적'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대구가 더 이상 절대적인 '보수 텃밭'으로만 설명되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대구에 국한된 변화라기보다 장동혁 체제 전반의 한계가 드러난 결과로 보고 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이미 대구뿐 아니라 전국 주요 지역에서 민주당이 앞서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며 "국민의힘이 중도층 확장에 실패하고 혁신 논쟁마저 좌초된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짚었다. 이어 "대구 공천 파동까지 겹치며 보수 내부 균열이 드러났고, 이는 장동혁 체제의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홍 소장은 "특히 대구는 지역 경제 침체로 인한 불만이 누적된 상황에서, 김부겸 전 총리를 통해 정치적 변화 가능성을 기대하는 심리도 일부 작용하고 있다"며 "이러한 조건이 맞물릴 경우 대구의 판이 '디비질'(뒤집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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