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장 sisa@sisajournal.com]
왜 '보수의 심장' 대구는 '정권 심판론' 대신 '국힘 심판론'을 말하나
지지율 추락 '민심 외면' 받는 野…부족한 건 의석수가 아닌 '실력'
치명적이었다. 대통령의 생중계 국정운영은. 부처 업무보고부터 국무회의까지, 국민은 그간 보지 못한 것들을 생생하게 목도하게 됐다. 매체의 취재를 통하지 않아도 국민이 직접 국무회의에서 논의된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번 지방선거로 따지면, 대통령이 광역단체장과 만나는 자리가 특히 치명적이다. 전국에서 열리는 타운홀미팅엔 각 지역의 광역단체장도 배석한다. 대부분이 국민의힘 소속이다. 국민은 생생히 본다. 야당 소속 광역단체장이 대통령을 결코 견제할 수 없음을. 권력이 없어서? 그것도 아니다. 그럼 왜? 대통령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지 못할 만큼 무능해서.
가령 김진태 강원지사는 보수진영에서 '강성'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대통령과 싸우기는커녕 제대로 말도 못 하고 번번이 제압당할 뿐이었다. 국민의힘 소속 김홍규 강릉시장이 원수(原水) 확보 비용에 대해 제대로 답을 못 하자 대통령에게 질타를 당하기도 했다.
4월1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에서 열린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 후보자 공정 경선 협약식에서 후보자들이 공정 경선을 다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를 지키겠다' 대신 '대구가 살려달라'"
그들의 태도는 잘못된 게 아니다. 당연한 것이다. 보수 지지층에 어필하려고 카메라 앞에서 대통령과 싸우려는 광역단체장이 있다면, 그는 무책임하고 무능한 광역단체장이다. 아무리 야당이라도 광역단체장의 책무는 정부·여당을 견제하는 일이 아니다. 지방정부를 통치하는 일이다. 예산 지원이든 정책 지원이든 중앙정부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 필요하면 국회의 입법도 받쳐줘야 한다. 정부·여당과 싸우는 광역단체장이 그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야당 입장에서 전가의 보도와도 같은 선거 전술은 '정권 심판론' 혹은 '정부 견제론'이다. 국민의힘은 말한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다 장악한 민주당이 일당 독주하지 않도록 지방선거에서라도 국민의힘을 찍어 견제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런데 보수 지지자들은 봐버렸다. 이미 뽑힌 국민의힘 소속 광역단체장들도 대통령을 견제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것도 생중계로. 권력이 없어서? 아니, 멍청해서.
삼권 분립은 국가권력을 입법·행정·사법의 세 기관으로 나누어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원리다. 국가권력을 어느 누군가가 독점하지 못하도록 견제하고 균형을 이뤄야 권력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주의', 국가의 주인 국민을 위한 제도인 것이다.
그런데 삼권분립에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를 견제한다'는 아이디어는 없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견제한다'는 아이디어도 없다. 두 영역을 분리하면 '독재'가 힘들다는 아이디어 정도는 있다. 그러니까 두 영역을 한 정당이 독식하는가 여부보다 지방정부의 권한이 어느 정도인가가 더 중요하다. 지방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는 지방의회가 한다. 중앙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는 국회가 해야 할 일이다.
만약 지금 정부와 여당이 폭정을 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를 견제하고 제어할 힘이 있는 것은 누구일까? 제1야당, 국민의힘이다. 소수 정당이라 불가능하다고? 그렇지 않다. 국민의힘이 정부와 여당 견제에 실패하는 건 단지 의석수 때문이 아니다. 지지율 때문이다.
20대 국회에서 제1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의석이 과반에 이르지 못했다. 123석이었다. 법적 권한으로만 따지면 의석 구조상 민주당 혼자서는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20대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의석수가 문제가 아니라 민심이 더 본질인 것이다. 107석으로도 국민의 지지를 더 많이 받으면 160석을 얼마든지 견제할 수 있다.
국민의힘은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 읍소한다. 대구마저 넘어가면 보수는 끝이라고. 정부·여당이 독주하지 않도록 견제하기 위해 영남만이라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에 힘을 실어달라고. 그러나 이것은 국민의힘의 일자리를 지켜달라는 요구일 뿐 중앙정부에 대한 견제력을 지켜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사실 정부·여당을 견제하려면 자기들이 똑바로 해서 지지를 받으면 된다. 그들은 이 와중에도 자기만 살겠다고 아귀다툼만 한다. 다른 지역들에서는 출마할 후보도 제대로 찾지 못하면서 대구·경북에 출마하겠다는 후보는 문전성시를 이룬다. 서로 자기가 그 문으로 들어가야겠다고 멱살을 잡고 싸워댄다. 대구를 살리겠다는 이가 없고, 대구더러 당을 살려달라고만 한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국민의힘은 107석을 얻을 수준의 정당이 아니다. 다만 민주당이 200석을 넘으면 공산주의 개헌을 할 거라는 공포 마케팅이 먹힌 탓에 개헌선 이상을 간신히 확보한 정당일 뿐이다.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 아니라 제2야당이었다면 정의당 같은 무의석 정당이 됐더라도 놀랍지 않다. 국민의힘이 정치를 못해서 생긴 부채를 왜 대구 시민이 피해를 보고 대신 메워줘야 하는가?
정부·여당을 견제하기 위해 대구시장이라도 야당에 달라는 말은 정부·여당 견제를 국회에서 야당인 자기들의 노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대구 시민의 피해를 담보로 하겠다는 것이다. 대구시장이 대통령을 견제하겠답시고 임기 4년 동안 정부와 싸움만 하면 어떤 일이 발생하겠는가? 정부 입장에서는 대구시가 어떤 예산을 필요로 하는지, 어떤 정책적 지원이 시급한지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여당 입장에서는 대구를 어떤 입법과 예산으로 뒷받침해야 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야당의 광역단체장이 싸움만 하려들면 정부·여당 입장에선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다. 그러면 그 피해는 결국 대구 시민에게 돌아간다. 그게 국민의힘이 지금 대구시에서 하겠다는 일이다.
김부겸한테 '부채 의식' 있는 대구 시민들
김부겸 전 총리는 2020년에 대구 시민들에게 심판받아 낙선한 게 아니다. 그는 낙선하기 직전까지도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대구에 1조원의 예산을 갖고 왔다. 민주당이 180석으로 팽창하는 그 총선에서 대구는 '우리라도 지키지 않으면 보수가 궤멸한다'는 정서로 보수 정당에 투표했다. 말하자면 '개헌 저지선'을 지키기 위해 낙선시켰다. 그래서 대구 시민들 마음 깊숙한 곳엔 김 전 총리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다. 일을 잘했지만, 보수를 지킨다는 정무적 판단으로 낙선시켜서 그렇다.
일편단심 국민의힘 계열 정당에만 투표를 해왔는데 정작 대구를 굉장히 나쁜 상황으로 만들었다. 그 책임을 느껴야 할 국민의힘은 대구에 미안하다는 말조차 없이 또다시 대구를 자신들의 구명정 취급한다. 타이타닉의 영국 부유층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사람조차 없다. 대구를 자신들을 위해 다시 희생시키려 한다. 반면 대구 시민들에게 김부겸이라는 정치인이 쌓아온 서사는 정확히 이 대척점에 있다. 이것이 최근 김부겸 현상의 정체다. 국민의힘과 김부겸이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합작이다. 보수의 심장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서늘하다.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