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영 시사저널e 기자 song@sisajournal-e.com]
중동발 에너지 충격에 드러난 한국의 화석연료 의존 구조
태양광·풍력 전환 가속…국내 기업, 내수·수출 판 커진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을 크게 뒤흔들고 있다. 전 세계 원유의 27%(하루 약 2000만 배럴)가 지나가는 호르무즈해협이 막히면서 1970년대 석유파동과 맞먹는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석유뿐만 아니라 석유에서 나오는 비닐, 플라스틱을 비롯해 제조 공정에 필요한 가스까지 부족해지면서 산업 전체가 휘청이는 수준이다. 특히 중동에서 들여오던 원유 공급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해외 화석연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우리나라 에너지 구조의 뼈아픈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런 위기감 속에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가 다시 뜨고 있다.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든든한 대안으로 부각된 것이다. 세계 각국은 앞다퉈 에너지 정책을 뜯어고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이 중국산 태양광·풍력 제품을 멀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우리 기업들에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쟁 이전까지 약세 흐름을 이어가던 국제유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지난 2월말만 하더라도 67달러 선에서 거래됐던 서부텍사스유(WTI)는 3월31일 장 중 배럴당 106달러를 넘어섰다. 심리적 저지선으로 여겨져 왔던 100달러 선을 넘긴 것이다.
ⓒpixabay
"원유 끊기면 끝장" 에너지 자립 관심 커져
더 큰 문제는 단순히 원유 가격이 비싸진 것을 넘어, 최악의 경우 원유 자체를 제때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하나증권이 최근 낸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정유 회사나 석유화학 공장들이 쌓아둔 원재료는 빠르면 이달 중순쯤 바닥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비축유를 방출하며 급한 불을 끄고 있지만, 바닷길이 몇 달 이상 계속 막히면 본격적인 원유 부족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진다.
이런 불안감은 전 세계가 에너지 전략을 처음부터 다시 짜도록 만들고 있다. 화석연료에 기대는 비중을 줄이고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다. 특히 태양광은 설치 기간이 짧고 비용이 저렴해 전기를 빨리 만들어낼 수 있고, 풍력은 거대한 규모로 전력을 쏟아낼 수 있어 든든한 대안으로 꼽힌다.
이진호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최근 기업 분석보고서를 통해 "이번 전쟁으로 에너지 안보 패러다임이 변했다"며 "화석연료 공급망의 취약성이 드러났고, 신재생에너지의 상대적인 매력도를 높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제 각국은 과거처럼 효율성이 아닌 자급력과 안정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 정부도 재생에너지 확대를 공식 선언하며 정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제주도 타운홀미팅에서 "화석에너지에 의존하면 미래가 매우 위험하다. 대한민국은 전체적으로 재생에너지로 정말 신속하게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정부는 현재 34기가와트(GW) 수준인 국내 재생에너지 설비를 2030년까지 약 3배인 100GW로 대폭 늘릴 계획이다. 특히 태양광 목표치는 87GW로 훌쩍 뛰었는데, 이를 맞추려면 앞으로 5년 동안 매년 10GW를 넘는 새 설비를 지어야 한다.
조혜빈 교보증권 연구원은 'Re-NEWable: 에너지 패권의 서막' 보고서에서 "국내 태양광 시장은 향후 5년간 연평균 10GW 규모의 확장기를 맞이할 것으로 전망한다. 보수적인 관점에서 추가 설치 목표의 절반(약 25GW)만 반영하더라도, 연간 5GW라는 내수시장이 형성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결과적으로 국내 태양광 시장이 커지는 방향성은 확고하다는 판단"이라고 밝혔다.
태양광을 늘리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동네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햇빛소득마을'이 대표적이다. 이를 2030년까지 전국 2500곳 이상으로 늘려, 발전 을 주민들과 나누고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의 경제도 살리겠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아파트 베란다를 활용한 미니 태양광이나 학교·공공건물 등에 설비를 폭넓게 확충해 일상 속 재생에너지 저변을 넓혀갈 방침이다.
풍력발전의 핵심 무기는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사업이다. 서해안 일대에 거대한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짓고, 여기서 만든 전기를 수도권 등 주요 수요지로 끌어올리는 초대형 송전망을 까는 프로젝트다. 이 사업에 들어가는 돈만 11조원 규모여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관련 기자재나 시공 수요도 함께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글로벌 러브콜에도 인허가는 걸림돌
전 세계적으로 쏟아지는 수요 역시 국내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성장을 기대하게 하는 요인이다. 한때 트럼프 미 행정부의 정책 탓에 투자가 움츠러들기도 했지만, 최근 중동전쟁으로 원유 공급 불안이 커지고 인공지능(AI) 열풍으로 전기가 어마어마하게 필요해지면서 재생에너지를 찾는 곳이 급증하고 있다. 여기에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흐름까지 더해져 튼튼한 성장 발판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 2월 내놓은 '전력 2026' 보고서를 보면,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전 세계 전기 수요는 매년 3.6%씩 쑥쑥 증가할 전망이다. 2030년쯤엔 전 세계에서 쓰는 전기의 절반을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이 책임지게 된다. 특히 재생에너지는 2030년까지 매년 약 1000테라와트시(TWh)씩 늘어날 전망인데, 이는 우리나라가 1년 내내 쓰는 전기량보다도 훨씬 많은 엄청난 규모다.
이런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우리나라 신재생에너지 산업은 중국의 빈자리를 차지할 반사이익도 기대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에너지 안보를 이유로 태양광 모듈이나 풍력 장비 등에서 중국산 의존도를 낮추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관련 국내 기업들이 혜택을 볼 것이라는 기분 좋은 예측이 나온다.
하지만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 부딪히는 깐깐한 과제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한 에너지 업계 전문가는 "중동 사태 때문에 에너지 안보가 중요해지면서 신재생에너지에 대해 긍정적 흐름이 생긴 것은 눈여겨봐야 한다"면서도 "다만 인허가가 늦어지거나 전기를 실어 나를 전력망이 부족한 점, 초기에 투자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점 등 해결해야 할 숙제가 여전히 많아 실제 발전소가 세워지는 속도는 기대만큼 빠르지 않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