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성 기자 jys@sisajournal.com]
26조 추경 재원은 '초과 세수'…실상은 세수 추계 실패 포장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尹 정부 논리 구사하는 민주당
정유사에 5조, 재생에너지엔 5000억…국회는 '견제'보다 '선심'
"추경안의 재원은 현 정부가 이뤄낸 경제 성장의 과실인 반도체 경기 호황과 증시 호조에 따른 초과 세수다."
이재명 정부의 예산을 총괄하는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3월31일 중동전쟁에 대응하기 위한 올해 첫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전을 보면 그가 사용한 단어인 '과실'은 두 가지 상반된 뜻을 가졌다. 하나는 노력의 결실을 뜻하는 과실(果實)이고, 다른 하나는 실수나 잘못을 의미하는 과실(過失)이다. 박 장관의 설명은 전자로 읽힌다. 경기 부양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세금이 예상보다 더 걷혔고, 그 덕에 추경을 편성할 수 있었다는 취지다.
실제 이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경제와 민생을 강조한 만큼 반도체 산업과 증시 호조에 정부가 기여한 부분이 명확하다는 평가는 분명히 있다. 다만 그 재원을 바탕으로 편성된 이번 추경을 과연 경제 성장의 과실(果實)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특히 세부 사업의 실효성보다 그 이면을 주목하고 있다. 25조원이 넘는 초과 세수의 이면에는 반복되는 세수 추계 실패라는 구조적 결함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4월2일 국회 본회의장에 중동 사태 대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들어서며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반복되는 세수 추계 실패라는 구조적 결함
정부는 이를 정면으로 해명하기보다는 '빚 없는 추경'이라는 표현을 앞세우는 분위기다. 일각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대목은 가리고 유리한 대목만 앞세우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를 따져 물어야 할 국회 역시 제도 개선 논의보다는 개별 사업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랏돈을 적재적소에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돈이 얼마나 들어올지 헤아려야 한다. 그래서 정부는 본예산을 짤 때 한 해 동안 얼마나 세금이 걷힐지 추산하고 이를 세수 추계라 부른다. 이 예측보다 세금이 더 걷히면 '초과 세수', 덜 걷히면 '세수 결손'이다.
추경은 그렇게 확정된 본예산을 부득이한 사정으로 변경해야 할 때 예외적으로 손보는 절차다. 늘릴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다. 국가재정법은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경기 침체·대량실업·남북관계 변화 등 대내외 중대한 변화 △법령에 따른 지출이 발생했을 때 추경을 편성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추경 역시 중동전쟁에 따른 고유가 부담 및 에너지 위기로 인한 민생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취지로, 그 자체엔 이견이 적은 모습이다.
늘어난 지출은 어디서 채울까. 통상 정부는 국채를 발행하거나 여유 재원을 활용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정부는 본예산 대비 세수가 25조2000억원 더 걷힐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를 모두 추경에 편성하기로 했다. 반도체 경기 호황과 증시 호조로 법인세와 증권거래세가 늘면서 초과 세수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재정 건전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지출을 늘리는 '빚 없는 추경'이라는 논리도 여기서 나왔다. 이런 추경이 전례 없는 방식은 아니다. 2006년 국가재정법 제정 이후 총 16차례의 추경 가운데, 초과 세수를 재원으로 한 경우는 2016년, 2017년, 2021년, 2022년 등 네 차례다.
문제는 뜻밖의 횡재처럼 보이는 초과 세수의 이면엔 구조적인 재정 운용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추경은 사실상 본예산 편성 당시 잘못된 세입 추계와 국채 발행 계획을 뒤늦게 바로잡은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초과 세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법인세와 증권거래세는 경기 흐름에 민감한 항목인 만큼, 기업들의 3분기 실적이 공개된 지난해 11월 세수를 다시 추계해 반영했으면 예측 정확도가 더 높았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세수 예측에 변수도 많은 만큼 단순히 추계 실패를 문제 삼기 어렵다는 반론도 많다. 하지만 정권마다 상당한 규모의 세수 오차가 반복된다는 점에서 추계를 근본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문재인 정부에서 초과 세수는 2017년 23조1000억원, 2018년 25조5000억원이었다. 코로나19 이후인 2021년과 2022년에도 초과 세수는 각각 61조3000억원, 52조6000억원에 달했다. 당시 정부가 확장 재정 기조를 유지했음에도 예상보다 더 걷힌 세수가 적시에 집행되지 못하면서 정책 효과는 물론 재정 운용의 효율성도 떨어졌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반대로 감세를 기반으로 한 재정 긴축을 강조해온 윤석열 정부에서는 대규모 세수 결손이 반복됐다. 2023년과 2024년 세수 결손 규모는 각각 56조4000억원, 30조8000억원에 달했다. 감세 정책으로 실제 세입 기반이 약화한 데다 세수 추계까지 빗나가면서, 긴축 재정의 실효성도 함께 흔들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형태만 다를 뿐 정부의 세입 예측 능력이 번번이 시장과 경기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점은 같은 셈이다.
박홍근, 4년 전엔 "엉터리 재정 전망, 충격"
문제는 이를 바로잡아야 할 국회 역시 정권의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야당일 때와 여당일 때 정반대 논리를 서로 반복하는 모양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편성된 62조원 규모의 추경이다. 역대 최대 규모였던 당시 추경 역시 약 53조원 규모의 초과 세수를 재원으로 편성하자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은 초과 세수 진상 규명을 위한 TF를 꾸리고 국정조사권까지 언급하며 정부를 정조준했다.
당시 민주당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였던 박홍근 장관은 TF 회의에서 정부를 향해 "집안 살림도 이 정도로 예측이 맞지 않으면 엉망이 될 텐데, 세계 경제 규모 10위인 대한민국의 재정 전망이 이처럼 엉터리였다니 충격"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채 발행이 없어 재정 건전성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맞섰다.
그때와 지금의 여야 공방은 사실상 정당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세수 추계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의 동력이 지속되지 않고 정권이 바뀌면 힘을 잃는다는 게 재정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3분기 기업 실적이 나오는 11월에 세수 재추계를 하자는 문제 제기가 오래전부터 있어 왔으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재정 운용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성이 흔들리다 보니 다른 논란들도 꼬리를 물고 있다. 일각에선 이번 추경 재원에서 한국은행 잉여금 초과 납입분 3조4359억원이 제외된 배경에 2차 추경 가능성 등 의도가 깔려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행은 매년 발생한 이익의 일부를 정부에 잉여금 형태로 납부한다. 올해는 당초 예상보다 3조원 이상을 더 벌었고, 이 금액이 추가로 국고에 납입됐다. 이는 초과 세수와 달리 이미 납입이 완료된 확정 재원이라는 점에서, 추경 재원으로 활용하기에 더 적합하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이를 활용할 경우 국채를 추가로 상환해 국가채무를 줄이거나, 추가 지출을 통해 지원 규모를 확대하는 선택지도 가능해진다.
이와 관련한 문제 제기는 여당에서도 나왔다. 김용만 민주당 의원은 4월7일 국회 예결특위에서 소득 하위 70% 국민에게 지급하는 고유가 피해지원금과 관련해 박홍근 장관에게 "상위 30%까지 포함해 전 국민 지원하면 추가 예산이 1조8000억원가량"이라며 "한국은행 잉여금 3조4000억원이 반영되지 않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2차 추경을 염두에 두고 일부러 실탄을 남겨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정부는 하반기 세수 결손에 대비하기 위한 완충 재원 성격으로, 내년에 법령에 맞게 쓰면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재정 운용의 투명성과 원칙 측면에서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국회 싱크탱크인 예산정책처는 "정부가 한은 잉여금을 하반기 세수 결손에 대비한 완충 재원으로 유보하려는 의도였다 하더라도 그 활용 방안은 세입경정에 반영해 국회 심의 과정에서 논의되는 것이 재정 통제 원칙에 부합한다"고 짚었다. 확정된 세입을 추경안에서 제외하면서 국회가 실제보다 축소된 재정 규모를 전제로 심의에 들어갔고, 잉여금을 활용할 기회 자체도 저버렸다는 것이다.
2022년 6월10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초과세수 진상규명과 재정개혁추진단 회의에서 박홍근 당시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현 기획예산처 장관)가 발언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국회, '송곳 심의' 대신 '끼워넣기' 반복
이렇듯 국가 재정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빗발치지만, 국회에서 이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방선거를 앞둔 여대야소 국회에서 제도적인 논의가 심도 있게 이뤄지지 않은 채 개별 사업에 대한 정치적 줄다리기만 이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 상임위의 심의 과정은 이를 잘 보여준다. 정부가 26조2000억원의 추경안을 제출하자 이를 심사하는 10개 상임위는 기다렸다는 듯 증액 요구를 쏟아냈다. 특히 민주당 주도의 상임위인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만 정부안에 없던 20개 사업이 무더기로 신규 편성됐고, 베란다형 태양광 사업 예산은 250억원에서 725억원으로 3배 가까운 수준으로 확대되기도 했다.
동시에 실효성 문제가 거론되는 사업들에 대한 개선은 요원하다. 대표적으로 전체 추경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10조1000억원 규모의 고유가 부담 완화 패키지는 단기 처방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유사 손실 보전 등 석유 최고가격제 지원에 5조원이 투입되고,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한 민생지원금에 4조8000억원이 배정된 반면, 에너지 구조 전환과 탄소중립 대응에 투입되는 예산은 5000억원에 그쳤다. 게다가 아직 정유사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계획도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예결위에서는 중국인 관광객 지원에 대한 공방이 주를 이뤘다. 빗나간 세수 추계에 대한 정부의 대응부터 국회의 행보까지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추경 규모가 적지 않은데, 그 시점과 재원, 구성이 정말 전쟁과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것인지 알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추경의 취지는 이해가 되지만 추경 시점, 물가, 환율 등의 실질적인 문제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