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성균관대 특임교수 sisa@sisajournal.com]
노동권 보호라는 명분 뒤에 가려진 협상 구조의 불균형
권리 확대에 상응하는 법적 책임, 균형 회복이 시급하다
"회장 나와라." "시장과 직접 보자." "장관도 교섭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이제 이런 요구가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지방정부를 넘어 중앙정부를 상대로 공공부문 노조가 교섭의 사용자성을 직접 다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충남지방노동위원회는 한국자산관리공사 등 공공기관 네 곳을 하청노조와 교섭 의무가 있는 '실질적 사용자'로 판단했다. 원청 책임의 범위를 넓게 해석한 것이다. 이에 따라 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부당노동행위로 판단될 수 있다. 노사 현장에서는 교섭 요구와 행정소송, 법적 분쟁이 잇따를 가능성이 커졌다.
노동권 보호라는 선의의 제도가 현실에서는 복합적인 갈등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원청과 하청, 노조와 정치가 얽힌 다층적 이해관계 속에서 분쟁 비용과 사회적 갈등이 동시에 확대되는 양상이다.
삼성전자 노조가 삼성 회장과의 직접 대화를 요구한다면, 삼성의 수많은 외주·하청·납품업체 노조는 어떤 요구를 하게 될까. 공공부문 역시 마찬가지다. 수많은 공공기관과 공공위탁기관 노조는 누구를 사용자로 규정하고 협상을 요구하게 될 것인가.
‘노란봉투법’ 시행 첫날인 3월10일 서울 세종로에서 열린 민주노총 투쟁 선포대회에서 집회를 마친 조합원 등이 행진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원청 사용자 범위 확대…노사 관계 새 충돌선
모두가 최고책임자와 직접 협상하겠다고 나설 때 그 비용은 결국 어디로 돌아갈까. 누구도 원하지 않았지만 그 부담은 소비자와 국민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합리적 정책'으로 설계된 제도가 현실에서는 또 다른 비용을 만들어내는 역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시행 직후 수많은 교섭 요구가 쏟아진 사실은 노란봉투법이 단순한 법 개정이 아니라 노사 관계 구조 자체를 흔드는 변수임을 보여준다. 노동자를 보호하고 원청 책임을 확대하겠다는 취지,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겠다는 방향은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 제도가 한국의 노동 현실 위에서 균형 있게 작동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한국의 노동 환경은 이미 독특하다. 노동조합의 조직력은 강하고 노동 이슈는 곧 정치와 사회 의제로 확장된다. 파업은 정치가 되고 갈등은 여론전이 된다. 이런 구조 속에서 기업은 협상의 주체라기보다 방어의 주체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이미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문제는 이 환경 위에 또 하나의 강력한 제도적 보호 장치가 더해졌다는 점이다. 일부 노동운동의 투쟁 방식이 점점 강경해지고 있는 현실도 외면하기 어렵다. 사업장 점거, 생산 중단, 설비 훼손 같은 극단적 사례가 반복될 때마다 노사 관계 전체의 신뢰는 흔들린다. 기업은 이를 불확실성이라는 비용으로 인식하고 투자를 보류하거나 전략을 수정한다. 그 결과 일자리는 줄어들거나 해외로 이동한다.
여기에 법 집행의 문제도 있다. 불법행위에 대한 공권력 개입이 일관되지 않다는 인식은 이미 사회에 퍼져 있다. 법은 존재하지만 현장에서 동일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면 법의 추가는 균형이 아니라 왜곡으로 작용할 수 있다. 손해배상 제한이 보호가 아니라 '책임의 비대칭'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 갈등은 협상이 아니라 힘의 경쟁으로 이동한다.
최근 논쟁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는 사용자 개념의 확대다. 원청을 사용자로 인정하는 범위에 따라 산업구조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하청·재하청 구조에서 원청 책임을 과도하게 확대하면 기업은 위험 요소를 줄이기 위해 외주 구조를 축소하거나 국내 생산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
둘째는 정당한 쟁의행위의 범위다. 불법 점거와 생산 방해가 어느 선까지 보호되는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면 법적 불확실성은 커진다. 특히 손해배상 제한과 결합될 경우 사실상 면책 효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의 우려는 현실적이다.
셋째는 산업과 계층 간 격차다. 대기업 노조처럼 협상력이 강한 영역에서는 법의 효과가 즉각 나타나지만 플랫폼 노동자나 영세 사업장 노동자에게는 여전히 제도가 충분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보호는 필요한 곳에 닿지 못하고 갈등은 강한 곳에서 확대되는 이중 구조가 고착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기업의 선택을 바꾼다. 자동화 투자 확대, 해외 이전, 신규 채용 축소는 모두 합리적 대응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이 개별 기업의 선택을 넘어 국가 전체의 고용 구조와 산업 경쟁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권리만 있고 책임 없다면 제도 지속 어려워
필자는 공직에서 제도 설계의 무게를 직접 경험했다. 특히 인사혁신처장으로서 공공부문 인사와 노사 문제를 다루며 확인한 사실은 하나였다. 권리는 언제나 책임과 함께 설계되어야 지속 가능하다는 점이다. 권리만 강화되고 책임과 집행이 뒤따르지 않으면 제도는 균형을 잃는다.
국제 기준도 다르지 않다. 주요 선진국 역시 노동권을 보호하지만 동시에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과 법 집행의 일관성을 엄격히 유지한다. 권리와 책임이 함께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만든다.
결국 핵심은 균형이다. 노동권 보호는 강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보호는 법의 원칙과 책임 구조 위에서 작동해야 한다.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과 일관된 집행이 필요하며 공권력은 상황에 따라 흔들려서는 안 된다. 동시에 진정으로 보호가 필요한 취약 노동 현장에는 행정력이 더욱 집중되어야 한다.
노사 관계는 어느 한쪽의 승리로 유지되지 않는다. 균형이 무너지면 협상은 사라지고 대결만 남는다.
그런 면에서 노란봉투법은 하나의 시험대다. 이 법이 노동을 보호하는 제도로 자리 잡을지, 아니면 갈등을 증폭시키는 기폭제가 될지는 결국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기업과 노동, 정부가 각자의 이해를 넘어 전체의 균형을 고민할 때 비로소 해답이 보인다. 그 균형을 지키는 일, 그것은 특정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몫이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성균관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