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수 세대정치연구소 대표 sisa@sisajournal.com]
집값·취업난·만혼이 만든 새로운 가족 풍경
부모와 동거하는 30대 자녀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바뀌어야
요즘 '전업자녀'라는 표현이 자주 보인다. 전업자녀는 글자 그대로 자녀가 '전업(專業)'인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일각에서는 전업자녀를 '캥거루족'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지만, 그 뜻은 사뭇 다르다. 캥거루족이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로부터 정서적·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사람'을 뜻하는 단어라면, 전업자녀는 '부모와 동거하고 있는 성인 자녀' 정도의 의미를 담고 있다. 결정적 차이는 가정 내 역할이다. 전업자녀들은 부모 집에 얹혀살더라도 '1인분' 이상의 몫은 하려 한다. 주거·생계를 지원받는 대신 가사·돌봄 노동을 제공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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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있어도 독립하지 않는 '신캥거루족'
전업자녀는 성인 자녀들의 반발 심리가 담긴 표현이기도 하다. 자신들을 캥거루족처럼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지하는 '민폐 자녀'나 '등골 브레이커'로 보지 말라는 것이다. 전업자녀와 비슷한 말로 '홈 프로텍터(home protector)' '자택 경비원' 등이 있다. "아직도 부모님 집에서 독립하지 않았느냐"는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되받아치는 청년들의 해학이다.
전업자녀라는 단어 자체는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중국도 경기 침체로 청년 실업이 급증하며 어른이 되어도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다. 청년 실업률이 2023년 6월 21.3%를 기록할 정도였으니 그 심각성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IMF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 청년 실업률은 7~8% 수준이었다. 경기 침체와 실업, 주거난이 청년층의 독립 시기를 늦추는 건 보편적인 현상이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버블경제 붕괴 이후 '부모에게 기생해서 사는 청년'을 뜻하는 용어인 '패러사이트 싱글'이 유행했다. 우리나라도 청년 실업률과 집값이 치솟은 2000년대부터 캥거루족이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성장동력이 약해진 중국이 지금 그 경로 위에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성인이 되면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번듯한 직장이 있더라도 여전히 부모와 함께 사는 이가 많다. 바로 '신캥거루족'이다. 실제로 직업의 유무와 상관없이 부모와 함께 사는 젊은이는 계속 늘고 있다. 서울연구원이 2024년 조사한 '서울시민 생애 과정 변화와 빈곤 위험' 보고서에 따르면, 시대가 뒤로 갈수록 부모와 함께 사는 비율이 높아졌다. 1971~75년생은 35세 때 부모와 동거하는 비율이 18.6%에 그쳤다. 하지만 1981~86년생은 32.1%였다. 서울·수도권 거주자로 한정하면 비율은 더 높아진다.
주된 이유는 당연히 주거비다. 집값은 물론 전월세 비용도 상승하면서 안정적인 직장이 있어도 주거비를 부담하는 게 버거워졌다. 일본의 젊은 직장인들은 월급의 3분의 1가량을 월세 내는 데 쓴다고 한다. 우리도 점점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는 지난 2월 사상 처음으로 150만원을 돌파(151만5000원)했다. 2024년 서울의 1인당 개인소득이 3222만원이었으니, 둘이 살아도 버거운 수준인 건 분명하다. 월급에서 주거비로 빠지는 부분이 커질수록 자산 형성은 그림의 떡이다. 주거비 상승은 독립과 결혼, 출산을 연쇄적으로 늦춘다.
만혼이 보편화된 사회 풍토도 간과할 수 없다. 요즘 청년들은 예전만큼 결혼을 많이 하지도 않고, 하더라도 늦게 한다. 여기서 말하는 '예전'은 88서울올림픽 때 이야기가 아니다. 국가데이터처는 지난해 12월 '2015~23년 인구동태패널통계'에서 1983년 출생 남성과 1991년 출생 남성의 혼인율을 비교했다. 32세 기준 혼인율은 1983년생이 42.8%였지만, 1991년생은 24.3%였다. 여성도 31세 기준 1984년생의 혼인율은 56.3%였지만, 1992년생은 33.1%에 불과했다. 고작 8년 사이에 혼인율이 절반으로 떨어진 것이다. 평균 초혼 연령도 계속 늦어져 2000년 남편 29.28세, 아내 26.49세였던 게 2025년 남편 33.85세, 아내 31.62세가 되었다. 예전엔 30대 초반만 되더라도 결혼해 독립했는데, 이제는 30대 중반에도 결혼하지 않는 경우가 늘다 보니 그만큼 독립의 필요성도 줄어든다.
요즘 '김삼순'은 40대, 고령화 현실 고려해야
청년들이 실업·집값 상승 등 경제적인 원인으로 독립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건 분명 문제다. 그러나 성인 자녀가 부모와 함께 사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볼 일은 아니다. 결혼 등 굳이 나가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면,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방법일 수 있다.
자녀를 전업으로 하는 이들에게도 역할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최근 《전업자녀》라는 저서를 출간한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일방적인 지원만 받는 백수와 상호 교환을 전제로 한 전업자녀는 다르다"고 평가한다. 청년 세대가 자산을 형성한 부모에게 일정 부분 기대는 대신, 가사·돌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가족 내에서 저비용·고효율 복지 체계를 구축한다는 게 핵심이다.
역할을 떠나 30대 청년들이 부모와 함께 사는 걸 과거의 시선으로 평가하는 것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보통 20대 대학생이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않았다고 해서 캥거루족 같은 표현을 사용하진 않는다. 캥거루족이라고 하면 대개 30대 청년층을 연상케 한다. 그렇다면 몇 살부터 캥거루족이나 전업자녀로 불려야 하는가? 그런 기준은 없다. 그렇다면 우린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2005년 장안의 화제였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노처녀라고 구박받던 김삼순의 나이는 고작 서른이었다.
요즘은 노처녀라는 말 자체를 쓰지도 않거니와 30세에 결혼하지 않았다고 뭐라고 하는 것 자체가 세상 물정 모르는 이야기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 방영되던 당시 우리 사회 중위 연령은 34.8세였다. '삼순이'는 나이로 우리 사회 중간쯤에 설 어른이었다. 21년이 지난 오늘날 중위 연령은 47.3세다. 개인의 일생이 이 사회의 나이와 비례한다고 가정했을 때, 2005년 30대 중반에 결혼해 독립한다는 건 오늘날 40대 중반에 그렇게 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30대에 결혼해 독립하지 않는 게 반드시 경제적으로 궁핍하거나 나가서 살 집을 얻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치관 변화가 개개인의 생애 경로에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고, 사회 전반의 연령대가 높아지며 30대에는 아직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며 '노년 부모-청년·중년 자녀' 조합을 만들어내고 있다. 부모와 두 자녀로 구성된 '4인 가족'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족 모델이 거듭 만들어지고 있다. 전업자녀와 신캥거루족을 과거와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이동수 세대정치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