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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베네치아, 인천-22] 주민이 만드는 살기 좋은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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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계산동, '통합 돌봄' 등 도시재생 추진

日 다이시도 마을, '수복형 재생' 사업 성공

고려 인종 5년(1127) 창건돼 병자호란 이후 재건·보수를 거친 인천시 계양구 계산동 부평향교 주변에 노후 주택단지가 밀집돼 있다. /인천시 계양구

'동북아 베네치아, 인천'은 인천이 지닌 역사적, 문화적 자원을 바탕으로 미래형 해양도시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시리즈로서 <더팩트>와 인천학회(회장 김경배)가 공동으로 기획 연재한다. 2017년 9월 출범한 인천학회는 인하대, 인천대, 청운대, 인천연구원, 인천도시공사,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국내 최초의 지역학회로서 인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연구하는 지식공동체이다. 300만 대도시 인천의 도시 발전을 위한 새로운 정책과 담론을 형성하고 다양한 해법을 찾아가는 학술 활동의 성과는 다른 도시에도 적용될 수 있는 국가 발전의 에너지가 될 것이다.

'동북아 베네치아' 제목은 글로벌 해양도시로서 관광, 물류의 세계 거점 도시를 향한 인천의 발전 가능성과 미래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번 연재는 인천의 잠재력을 재조명하고, 시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공감의 장을 마련한다. 또 동북아 해양 네트워크의 중심 도시로 도약하는 데 필요한 이슈를 제공하고, 단순한 도시의 확장을 넘어 살고 싶은 지속가능한 도시의 미래는 어떻게 조성돼야 하는지 그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지난해 4월 국토교통부 도시재생사업 공모를 앞두고 마을 진단 워크숍을 열었다. 마지막 날 주민협의체 주민들과 마을지도를 펼치며 골목골목을 걷고 살폈다. 이날 부평향교에서 부평도호부 관아까지 이어지던 길, 계산동 향교로에서 계양대로194번길로 뻗어 있던 옛길의 흔적도 찾아냈다. 오래 머물면서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곳들이 새롭게 눈에 들었다.

인천시 계양구 계산1동은 노후 구도심이다. 지은 지 20년이 넘은 건물이 90% 이상이고, 주거용 건물의 82%는 30년을 넘겼다. 부평향교가 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40년간 높이 규제와 입지 제한에 따라 이 일대 건물의 평균 높이는 6.3m로 주변 지역(14.1m)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공영주차장 확보율은 18.7%, 1인당 공원녹지 면적은 기준치의 5분의 1 수준이다. 30년 사이 지역 인구는 40%가 줄었다. 1인 가구 비중은 53.7%로 증가했다.

워크숍을 통해 주민들은 '아이들이 갈 곳 없이 편의점 앞을 서성인다', '유모차를 끌기엔 보도블록이 위험하다', '골목이 너무 어둡고, 부평향교가 바로 옆에 있는데 동네 사람조차 잘 모른다' 등의 소박한 동네 관심사들을 풀어놨다.

과거에 계산1동과 비슷한 여건이었던 동네가 일본 도쿄도 세타가야구의 다이시도(太子堂) 마을이다. 좁은 골목과 노후 주택, 복잡한 토지 구조로 전면 재개발이 어려웠던 다이시도는 1970년대부터 철거 대신 '수복형 재생'을 선택했다. 낡은 것을 한꺼번에 허물지 않고, 필요한 곳부터 조금씩 고쳐나가는 방식이다.

주민들은 먼저 학습회를 통해 동네 문제를 스스로 파악했다. 직접 마을을 걸으며 위험하거나 불편한 곳을 찾아 지도에 기록했고, 그 내용을 행정에 반영해 나갔다. 전문가가 먼저 그림을 그리고 주민에게 설명하는 방식과는 출발점이 달랐다. 대규모 공원이나 랜드마크 대신 작은 공간들을 마을 곳곳에 설치해 일상의 동선으로 만들었다. 그 변화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세타가야는 도쿄에서 주거 환경이 가장 좋은 지역 중 하나가 됐다. 주거 환경이 불리하다고 포기하거나 무리하게 전면 재개발을 밀어붙일 이유가 없고, 제약이 클수록 주민이 주도하는 점진적 재생이 오히려 더 오래가고 더 단단하다는 사례를 남겼다.

지난해 하반기 주민들과 함께 준비한 국토부 도시재생 공모 사업에 인천 계양구 '계산동 일원 노후 주거지 정비지원사업'이 최종 선정됐다. 국비 148억 원, 시비 74억 원, 구비 77억 원 등 총 299억 원 규모다. 2030년까지 5년에 걸쳐 생활복합허브 조성, 공영주차장 확보, 공원·광장 리모델링, 노후도로 포장, 집수리 지원이 추진된다. 이에 따른 계산1동 도시재생의 의미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1970년대 일본의 주민참여 중심 도시재생 마을만들기(마치즈쿠리, まちづくり) 사업을 처음 시작한 도쿄도 세타가야구가 최근 지역 아티스트를 지원하는 '세타가야 아티스트 뱅크' 사업을 도입했다. /세타가야구

첫째, 함께 결정하는 마을이다. 계산1동 도시재생의 특성은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데 있다. 도시재생대학 1·2·3기를 거치며 주민들은 직접 마을을 살폈다. 파손된 보도블록, 야간 조명이 끊기는 골목, 쓰레기 투기 지역을 지도 위에 하나씩 표시했다. 또 빈 점포와 향교 앞 유휴부지 사용 방안, 안전한 등굣길과 방과 후 활동 공간 등 다양한 제안들이 계획에 반영됐다.

실제 '역사 자원은 많은데 연결이 안 된다'는 의견은 부평향교에서 도호부 관아까지 바닥 유도선과 역사 트릭아트 포토 존 설치, 미끄럼 방지 포장 '문화재길'로 실현됐다. '아이들이 갈 곳이 없다'는 제의는 노인정 중심의 기존 커뮤니티를 넘어 세대 통합형 문화교육 복합공간과 야외 활동 장소로 구체화됐다. '경사지에서 겨울마다 다친다'는 지적은 스마트 제설 시스템과 안전 비상벨 설치안을 확정하는 근거가 됐다.

둘째, 기억을 지키는 도시이다. 주민 탐사대가 직접 찾아낸 '계산 옛길'은 단순한 골목이 아니라 부평향교에서 도호부 관아까지 이어지던 옛 주민생활의 중심 동선이다. 규제에 갇혀 멈춰선 동네라는 여건을 극복하고 수십 년간 격자형 도로망 아래 묻혀 있던 길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옛길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도블록을 정비해 안전한 도보 환경을 만들고, 빈 점포와 유휴부지를 커뮤니티 거점으로 조성하게 됐다. 향교라는 하나의 '점'에서 시작해 마을 전체의 '선'으로 활력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셋째, 통합 돌봄으로 다시 살아나는 이웃이다. 초반 소수였던 주민 참여 규모가 해서초 학부모, 계산시장 상인, 대학생들로 점차 확산됐다. 특히 주민 제안이 실제 계획에 반영되는 신뢰가 쌓이면서 받는 쪽에서 만드는 쪽으로 주민 역할이 확대됐다. 이러한 변화로 계산동 구유지에 주민공동시설인 '계산 마루'가 들어서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체육활동, 돌봄의 기능을 수행하게 됐다. 놀이캠프, 마을 사랑방, 향교 연계 역사 체험 같은 프로그램들도 진행된다. 고령화와 1인 가구 비율이 높은 계산1동에서 살던 집, 살던 동네를 떠나지 않아도 일상이 유지되는 환경을 구축해 도시재생의 실질적인 뿌리가 되길 기대한다.

넷째, 자율 주택정비사업이다. 노후 건축물 비중이 93.8%에 달하지만 전면 재개발이 막혀 있는 계산1동의 현실적인 대안은 자율주택정비사업이다. 두 개 이상의 필지를 묶어 함께 개발하면 필지 단위로는 확보하기 어려운 주차장 같은 기반 시설을 효율적으로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웃과의 합의를 전제하는 방식으로서 재산권이 걸린 문제를 함께 결정하는 일은 제도가 아무리 잘 갖춰져 있어도 서로의 신뢰 없이는 시작조차 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더욱이 복잡한 인허가 절차, 사업비 조달의 불확실성, 공사 기간 중 이주 문제까지 겹치면 대부분은 엄두를 못 내고 포기하게 된다. 제도는 있으나 실제로 작동하기 어려운 이유들이다. 각 주체들의 조화로운 역할이 필요하다.

주민 합의체가 방향을 정하고 실행의 주체가 되면 구청은 인허가를 신속히 처리하며 국토부·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주민 사이를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도시재생센터는 노후도 진단부터 주민 갈등 조정, 이주·철거 설명 등 주민이 가장 막막해하는 실무를 곁에서 챙겨야 한다. 국토부·HUG·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저금리 융자와 공공 매입 확약으로 재무적 불안을 걷어내야 한다. 어느 한 주체가 느슨해지면 전체가 멈추는 구조인 만큼, 협력의 밀도가 곧 사업의 성패를 가르게 된다.

한 순간에 마을 전체를 바꾸려 하기보다는 성공적인 첫 사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기초자치단체와 복잡한 절차를 주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이해관계자들의 단계별 역할을 확인하는 실행 로드맵을 구축해 한 필지에서의 성공이 인근으로 자연스럽게 번져나갈 수 있고, 제도적 지원이 실제 건축으로 이어지는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내야 할 것이다.

계산1동 노후 주거지 정비지원사업을 통해 통합 돌봄의 거점으로서 '계산 마루'가 조성되고, 부평향교는 더 이상 개발의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어두운 골목을 지도에 표시하고, 사라진 길을 다시 걷고, 아이들이 뛰어놀 공간을 요구했던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동네를 바꾸고 있다.

도쿄 세타가야구 다이시도 마을이 제약 속에서 수복형 재생의 길을 찾아낸 것처럼 계산1동도 장기간 동네를 묶어온 규제 속에서 더 높이, 더 많이 짓는 대신 주민들이 현재의 삶을 지키면서 어떻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떠나지 않아도 되는 마을공동체는 주민들이 함께 마을 문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관계가 쌓이고 단단해진다.

글=박정우 인천 계양구 도시재생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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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학박사

기획=김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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