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의 가능성 아닌 '질환의 희귀성'이 지정기준
'수조원대 기술이전 계약'이라는 기사 헤드라인보다 중요한 건, 그 내용 속에 담긴 실질입니다. 쏟아지는 '세계 최초'와 '혁신'의 홍수 속에서 포장을 걷어내고 바이오 산업의 민낯을 냉정하게 독해하려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바이오 문해력을 키워드리겠습니다.[편집자주]
"이번에 우리 신약후보물질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은 것은 우리 약의 잠재력과 상용화 가능성을 글로벌 무대에서 인정받은 것으로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간혹 미디어에서 이런 내용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자사의 신약후보물질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이나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희귀의약품 지정(Orphan Drug Designation, ODD)'을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면 시장은 종종 이를 기술적 쾌거로 받아들이며 환호하곤 합니다. 하지만 희귀의약품 '지정'을 신약의 효능이나 성공 가능성을 규제당국이 보장해준 것으로 표현하는 것은 명백한 과장입니다.
모달리티 혁신성? 핵심은 '질환 희귀성'
희귀의약품 지정 제도는 시장성이 낮아 제약사들이 개발을 기피하는 소외된 질환의 치료제 개발을 독려하기 위해 탄생했습니다. 약이 타깃으로 삼는 '대상 질환(적응증)'의 환자 수가 얼마나 적은지가 지정의 핵심 관건입니다. 약이 얼마나 혁신적인 기술(모달리티)을 품고 있는지, 성공 가능성이 높은지가 기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국 FDA는 유병 인구가 미국 내 20만명 미만이거나, 20만명 이상이라도 약 판매를 통해 개발비 회수가 '합리적으로 기대되지 않는' 경우에 희귀의약품으로 지정합니다. 국내 식약처 역시 국내 환자 수가 2만명 이하이면서, 적절한 대체의약품이 없는 경우 희귀약으로 지정합니다.
어떤 약이 최첨단 유전자 치료제든, 평범한 화합물(저분자)이든 상관없이 타깃 질환이 기준에 부합하고, 해당 질환에 작동할 것이란 과학적 개연성(의학적 타당성) 정도만 초기 연구로 보여준다면 지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국내의 경우 최근 규제완화 차원으로 희귀의약품 신청서 제출해야 하는 ''대체의약품 대비 안전성·유효성 개선 자료' 제출 의무도 삭제했습니다.
신속허가·독점권 혜택 위한 '제도적 라벨'
물론 희귀의약품으로 지정 받으면 다양한 혜택이 있습니다. 규제기관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신속 허가 절차 제도, 세액 공제, 시장 독점권 등의 혜택이 부여됩니다. 이러한 혜택이 희귀의약품 개발사라면 반드시 챙겨야 하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혜택으로 인한 기대감이 높아진다고 표현하는 것은 맞지만, 희귀약 지정을 약의 효능과 상업성을 인정 받은 것으로 왜곡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임상 도중 효능 입증에 실패해 개발이 중단되는 희귀의약품 후보물질은 부지기수입니다.
결론적으로 희귀의약품 지정은 신약의 '포텐셜'을 공인하는 인증 마크가 아닙니다. 희귀한 적응증에 대한 제약사의 개발 의지를 촉진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부여하는 '제도적 라벨'에 가깝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핵심 기준은 얼마나 희귀한 질환이냐는 것입니다.
투자자와 시장 역시 기업의 희귀의약품 지정 소식을 '과학적 성공'으로 직결시키기보다는, 파이프라인 타깃 전략과 임상 비용 절감이라는 '사업적 호재' 정도로 차분하게 해석하는 문해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