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라인만으로는 읽히지 않는 기업 본질
'수조원대 기술이전 계약'이라는 기사 헤드라인보다 중요한 건, 그 내용 속에 담긴 실질입니다. 쏟아지는 '세계 최초'와 '혁신'의 홍수 속에서 포장을 걷어내고 바이오 산업의 민낯을 냉정하게 독해하려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바이오 문해력을 키워드리겠습니다.[편집자주]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이 비상장 바이오벤처 투자를 검토할 때 단지 '과학' 하나만 보지는 않습니다. 신약 개발은 우수한 기술력 하나만으로는 완주하기 어려운 험난한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핵심 인력들이 역할에 맞는 지분을 가졌는지 따지는 '지배구조(Governance)', 숱한 난관을 뚫고 갈 리더십과 신뢰도를 갖췄는지 보는 '사람(Team)', 그리고 본질적인 '과학(Science)'을 종합적으로 저울질합니다.
최근 시장의 뜨거운 감자인 삼천당제약 사례만 봐도, 비상장 시장의 문법이 상장 바이오 평가에도 유효한 잣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배구조와 투명성, 기업 가치 출발점
좋은 바이오 기업을 고르려면 파이프라인 이전에 기업의 경영 환경과 지배구조를 살피는 안목이 필수적입니다.
특히 최대주주의 성격과 철학은 매우 중요합니다. 기존 사업의 부진을 만회하거나 주가 부양을 위해 신사업으로 바이오를 끌어들이는 숱한 사례를 우리는 목격해 왔습니다.
이런 기업들은 대부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는 장기간 막대한 비용을 감내할 배포를 가지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공시 투명성과 주주 소통 능력 역시 파이프라인만큼이나 중요한 투자 펀더멘털입니다.
일방적으로 장밋빛 꿈만 남발하고 있지는 않은지 냉정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시장의 합리적인 의구심과 비판적인 시각에 대해 객관적인 데이터로 설득하려 하기보다, 소송 등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먼저 공격하는 기업이라면 더욱 경계해야 합니다.
최근 쏟아지는 수조원대 라이선스 계약 공시에서도 '총액'이라는 타이틀에 휘둘리기보다, 실질적인 기업 가치를 좌우할 '마일스톤 조건'과 진정한 상업화 속도를 짚어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핵심 인력과 리더십, 기업 실행력 기준
결국 신약을 완성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리더와 핵심 연구진이 실질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 검증해야 합니다.
이는 거창한 정보망이 없어도 사업보고서만 꼼꼼히 읽어보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R&D 비용의 투입 추이와 핵심 인력의 면면이 공개되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성과를 내세우면서도 정작 R&D 연구비는 매년 줄고 있다면 답은 자명합니다.
과거 한 바이오텍의 기업 소개 자료가 떠오릅니다. 핵심 연구 인력의 실명은 단 한 명도 없이 '해외 유명 대학 출신, 다국적 제약사 출신'이라는 타이틀만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해당 파이프라인을 이끌 전문가를 대표부터 연구소장까지 눈씻고 찾아봐도 없었지만, 이 회사는 당시 수백억원의 자금을 투자받았습니다. 물론 그 끝은 참담했습니다.
과학과 상업성, 숫자로 검증되는 가치
기업이 내놓는 보도자료를 넘어 객관적인 '상업성'을 따져봐야 합니다. 시장 규모를 터무니없이 과장하거나 기존 경쟁 약물들의 현황만 살펴봐도 그 회사의 실질이 보입니다. 경쟁사들이 이미 진입장벽을 세운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면서 천문학적 계약 규모를 내세운다면, 합리적 의심이 필요합니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숱한 빅파마들이 줄줄이 실패하는 기전을 두고, 뚜렷한 근거 없이 '우리만 성공할 수 있다'고 맹신한다면 이는 과학이 아닌 종교의 영역입니다. 해외 시장에서는 사실상 실패로 귀결된 프로젝트를 국내에서는 교묘하게 차세대 프로젝트로 포장해 부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건강한 투자 생태계를 위해서는 시장 내에서 활발한 논의와 건전한 비판이 계속돼야 합니다. 어떠한 형태든 비판의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는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치열한 논의와 검증의 과정 속에서 기업의 가치를 꿰뚫어 보는 우리의 '바이오문해력'도 한층 성숙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