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준 ㈜일종의격려 대표
2026년 시작과 함께 한국 대중문화에 두 이름이 호명된다. ‘흑백요리사’ 시즌 2의 우승 셰프 최강록과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감독 장항준. 두 사람의 직업과 성취를 상이하지만, 대중의 호응은 유사하다. 성공에 보내는 환호가 아닌 오랜 시간의 우회와 지체된 시간을 통과한 자에게 보내는 격려와 공감에 가깝다. 우리는 이들이 오늘의 결과에 닿기까지 통과했던 긴 시간, 실패로 해석되던 시기에도 멈추지 않았던 그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이번 시즌의 우승자, 최강록은 시간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대부분은 ‘두 번의 요리 경연대회에서 모두 우승한 1등’으로 기억하지만, 그가 걸어온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그는 음악을 하다 진로를 잃고 대학을 중퇴했고, 생계를 위해 식당 아르바이트에 몰입했다. 우연히 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보고 스시에 매료돼 요리의 길로 들어섰지만, 24살에 야심 차게 연 가게는 실패로 끝났고, 서른 무렵 도망치듯 떠난 일본에서 뒤늦게 요리학교에 입학했다. 요리사라는 방향을 찾은 이후 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지만, 이후 자신의 레스토랑은 몇 번의 개업과 폐업을 반복했다. 자신을 ‘조림 인간’이라고 해석하는 최강록의 문장이 하나의 밈이 돼 숏폼 콘텐츠를 채웠지만, 오히려 그의 요리법은 인생의 성취가 하루의 뜨거운 열기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요리 경연대회 우승 이후에도 대형 브랜드나 안정된 사업가의 길로 곧장 나아가기보다, 작은 식당을 열고 닫으며 ‘자기 요리’에 매진한다.
감독 장항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2002년 ‘라이터를 켜라’로 주목받았지만, 이후 연출작들의 흥행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후 여러 방송에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갔지만, 이 시기 대중이 기억한 장항준은 창작자보다는 입담 좋은 인물 중 하나였다. 그리고 2023년, 5년 동안 준비한 영화 ‘리바운드’가 전액 투자를 받으며 스크린에 올랐지만, 흥행에 실패했다. 데뷔 24년 만의 ‘1000만 감독’에 오른 그도 천재적 재능의 신인 감독 사이에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도전과 실패를 우회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2026년의 시작을 이들과 함께해서 반갑다. 타고난 재능과 천재적 감각으로 희열을 주는 스타가 아니라, 방향을 찾기 위해 방황을 멈추지 않은 이들의 서사여서 반갑다. 우리 삶의 많은 순간은 대개의 경우 불안과 미완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모든 방황이 공허한 소모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긴 문법으로 삶을 본다면 오늘의 방황은 나중에 다가올 성공에 의미를 더해주는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방황은 본디 긍정적이다.
지금의 문화는 빠른 결과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오늘날 성장은 가성비의 차원에서 얼마나 적은 노력으로 서둘러 목표를 이뤘는지 평가받는다. 자연스레 깊이를 더하는 성숙은 진지하고 피곤한 것으로 치부된다. 하이라이트만 소비하면 점점 더 서사의 두께는 얇아질 뿐이다. 모두가 이러한 세태를 우려하면서, 동시에 이 속도에 뒤처질까 불안해한다. 그 결과 타고난 천재성을 추앙하고, 성공이 예비된 사회적 배경만을 부러워한다. 그래서 느린 속도로 삶을 빚은 이들의 성공이 역설적이다. 가장 트렌디한 숏폼에서, 가장 아날로그적인 서사가 전달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조차 확신하지 못한 채 버텨온 시간이 있다. 땀 냄새나는 진한 노력과 어두운 숙성의 시간이 무엇을 향해 갈지 불안한 순간이 있다. 하지만 대중문화를 뒤흔든 쉐프와 감독의 성공처럼 축적된 시간은 이야기의 밀도를 높인다. 이들이 증명한 것은 삶에서 헤맨 시간만큼 더 풍부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실패한 경험들이 모일 때, 보다 단단한 결실이 된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접히고, 미뤄지고, 돌아간 시간의 주름 속에서 한 문장, 한 그릇의 음식, 한 편의 영화가 깊이를 갖게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방황이 조용히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 방황이 언젠가 한 그릇의 국물이 될 수도 있고, 한 편의 영화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일이다. 방황의 끝은 도착이 아니라 무르익음이니까. 세상이 봄의 꽃망울을 터트리기 전, 긴 시간 누적된 이들의 시도가 꽃을 피웠다는 사실이 무척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