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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부산의 미래는 역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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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부산대 통일한국연구원 특임교수·균형발전연구센터장

부산의 다음 30년을 전망해보면, 더 이상 외연 확장만으로 생존할 수 없다. 인구는 줄고 고령화는 깊어지며, 도시 운영비는 오히려 늘어난다. 이제는 ‘축소를 인정하고 재구성하는 도시’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그 출발점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호하게 역(驛)이라고 답하겠다. 역은 교통시설이 아니라 도시의 엔진이다. 사람과 돈, 정보와 일자리가 교차하는 ‘도시의 심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산의 현실은 어떠한가. 부산역 부전역 사상역 서면역 등 이용객이 많은 거점들조차 여전히 ‘타고 내리는 기능’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환승은 불편하고 보행 동선은 끊기며, 역 밖으로 나가면 도시가 곧바로 자동차의 영역으로 바뀐다. 역이 도시를 조직하지 못하니 역세권은 잠재력에 비해 낮은 밀도와 분절된 기능으로 남는다. 이제 부산은 결단해야 한다. 해안의 랜드마크 경쟁이 아니라, 철도 중심의 압축도시 전략이 부산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할 것이다.

코로나 이후 일본의 주요 도시를 방문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도 바로 역의 위상이었다. 일본에서 역은 단순한 승하차 공간이 아니다. 상업·업무·주거·문화가 응축된 도시의 핵이며 철도망은 생활권을 재편하는 구조적 장치다. 지금도 진행중인 도쿄의 도쿄역, 부도심 신주쿠 시부야의 역세권 개발사업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신주쿠는 JR동일본 등 여러 회사가 운영하고, 다수 노선이 환승하며, 하루 이용객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포화 상태의 교통과 개발용지 부족이라는 제약 속에서도 신주쿠 역세권은 ‘선로 위 도시’를 만들어냈다. 선로 상부에 인공지반을 설치해 보행 공간과 택시·버스 환승체계를 입체적으로 정리하고, 그 위에 상업·업무 기능을 고밀로 얹었다. 역은 더 이상 교통만의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 머물고 소비하며 일하는 도시 플랫폼이 됐다. 물론 대가는 컸다. 열차 운행이 멈추는 심야 3~4시간을 활용해 공정을 쌓아 올려야 했고, 그 결과 공사 기간은 10년을 훌쩍 넘겼다. 그러나 중요한 교훈은 분명하다. 역세권 개발은 건물을 짓는 일이 아니라 도시의 작동 방식을 다시 설계하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시부야는 더 급진적이다. 단지 역을 복합개발하는 것만으로는 도시 공간이 새로 생기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지상철이던 도큐 도요코선을 지하화해 1㎞ 내외의 가용 부지를 확보했고, 복잡했던 승강장과 환승 동선을 통합 조정해 ‘이동의 비용’을 줄였다. 선로와 승강장의 재배치는 곧 개발 가능 면적을 늘리고, 보행 네트워크를 재구성하며, 주변 권역까지 포함하는 장기 프로젝트로 확장되는 동력이 됐다. 마루노우치·도쿄역, 타카나와 게이트웨이 등도 마찬가지다. 철도역과 주변 도시 기능을 통합해 업무·상업·주거·호텔이 한 공간에서 순환하는 ‘스테이션 시티(Station City)’를 구현해왔다.

그 결과 역세권 반경 500~800m 내에는 고밀 주거와 상업·업무가 집약되고, 지상·지하·데크가 입체적으로 연결되며, 자동차 의존도는 낮아지고 도시의 생산성과 경쟁력은 유지된다. 이러한 모델을 가능하게 한 제도적 배경도 중요하다. 일본의 철도회사는 운임 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역내 상업시설, 오피스·호텔 임대, 광고 미디어, 공간관리, 이벤트, 관광 연계 등 다양한 비운송 을 통해 장기 프로젝트를 끌고 갈 투자 동력을 확보한다. ‘철도 운영’과 ‘도시개발’이 분리되지 않는 구조다.

부산도 역세권 개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부산역은 유라시아 플랫폼 등 재생사업이 추진됐고, 부전역세권은 오래전부터 개발 구상이 반복돼왔다. 동래역도 추진 단계에서 좌초된 경험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단발성 계획이나 건물 중심 개발을 넘어, 철도·보행·환승·토지 이용을 통합하는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역세권 개발의 핵심은 ‘고층’이 아니라 ‘연결’이며, ‘상징’이 아니라 ‘작동’이다. 환승 시간을 줄이고 보행 동선을 연속시키며, 역을 중심으로 생활·일자리·서비스를 압축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부산의 역세권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면 답은 하나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기획하고 설계해야 한다. 5년, 10년 성과에 매달릴 일이 아니다. 역세권은 도시의 체질을 바꾸는 장기 프로젝트다. 오늘의 계획이 30년, 50년 뒤 부산의 일상과 경쟁력을 결정한다. 부산이 역을 선택한다면, 그 역은 단순한 교통시설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성장 엔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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