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의약품 남용’ 보고서 발표
비만 아닌데 ‘경구용 식욕억제제’ 복용 59.5%
부작용 경험도 73.5%…입마름·두근거림 등
비만 치료용 식욕억제제를 비만이 아닌 사람들도 체중 감량 목적으로 복용하고 부작용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클립아트코리아
“키 172㎝, 몸무게 63㎏으로 체질량지수(BMI) 21.3인 김씨는 비만은 아니지만 더 날씬해지고 싶다는 생각에 집 근처 의원에서 경구용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았다. 조제약 봉투에는 ‘한번에 한알씩, 하루 한번 취침 전 복용’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친구와의 여행을 앞두고 빨리 살을 빼고 싶어 아침과 저녁에 한알씩, 하루 두번 복용했다.”
이처럼 비만 치료에 사용되는 경구용 식욕억제제, 이른바 ‘다이어트약’을 복용하는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실제로 비만이 아님에도 체중 감량을 위해 약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작용을 경험한 비율도 높아 의약품 오남용에 대한 관리와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최근 이런 내용을 담은 ‘의약품 남용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정책과제 : 다이어트약을 중심으로’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2022~2025년 사이 경구용 식욕억제제를 복용한 경험이 있는 만 19~64세 성인 257명을 대상으로 다이어트약 사용 실태를 조사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 결과, 식욕억제제를 복용한 이유로 ‘비만을 진단받지 않았으나 체중을 줄이기 위해’가 59.5%로 가장 많았다. 이어 ‘비만을 의사에게 진단받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34.6%), ‘주위의 권유로’(8.9%), ‘고혈압·당뇨병 등을 의사에게 진단받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8.6%), ‘호기심으로’(3.9%) 순이었다.
복용 기간은 3개월 이하가 45.9%로 가장 많았고, 3개월 초과~1년 이하가 37.0%, 1년을 넘는 경우도 17.1%였다.
이같은 사용 행태는 비만 치료 지침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대한비만학회 비만 진료지침에 따르면 경구용 식욕억제제는 BMI 27 또는 30 이상인 비만 환자에게 단기간 보조요법으로 사용하는 것이 권고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작용 경험 비율도 높았다. 응답자의 73.5%가 다이어트약 복용 과정에서 이상 증상을 겪었다고 답했다. 주요 증상으로는 입마름(72.0%), 두근거림(68.8%), 불면증(66.7%) 등 신체적 증상이 많았으며, 우울증(25.4%), 성격 변화(23.8%), 불안(22.8%) 등 정신적 증상도 보고됐다. 자살 충동을 경험했다는 응답도 3명(1.6%) 있었다.
체중이 다시 증가하는 이른바 ‘요요 현상’을 겪었다는 응답도 53.4%로 절반을 넘었다.
식욕억제제는 의료용 마약류로 분류돼 의존성과 중독 위험이 있다. 실제 조사에서도 부작용을 경험한 뒤 일정 기간 복용을 중단했다가 다시 약을 사용한 비율이 54.0%로 나타났고, 22.8%는 부작용이 있었음에도 복용을 계속했다고 답했다. 반면 부작용 때문에 복용을 중단한 경우는 23.3%에 그쳤다.
보고서는 이런 현상에 대해 다이어트를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외모 중심 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의약품 남용 예방과 관리를 강화하고 의사·약사·간호사 등 의료진이 의약품 남용에 개입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다이어트약 처방 시 정신과적 부작용 가능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환자의 상태를 지속해 관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